[ 정석범 기자 ]
한국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68)이 11월1일부터 서울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박 화백은 현대 한국화단이 서양화와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전통 수묵화를 탐색하고 현대화하는 데 매진해 왔다.
이번 전시의 화두는 ‘원융(圓融)’이다. ‘원융’은 신라 고승 원효가 정립한 개념으로 ‘모든 것이 막힘 없이 본성을 잃지 않고 조화를 이룬 경지’를 말한다. 박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문자와 그림이 하나로 통합된 한문 서예와 서법(書法)이야말로 원융의 문화적 요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서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서법의 요체는 붓끝을 글자의 중심에 놓고 움직이는 중봉(中鋒)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화가와 붓, 붓과 종이가 하나 되는 몰입의 경지로, 중봉 서법의 터득이야말로 표현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원융의 경지에 도달하는 지름길이다.
중국의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板宣紙)를 사용하는 것도 원융으로 나아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비교적 시간 여유를 갖고 붓을 놀릴 수 있는 전통 한지와 달리 옥판선지는 워낙 흡수성이 강해 잠시만 머뭇거려도 먹이 번져 그림이나 글씨를 망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오랜 내공과 정신적 몰입이 뒷받침돼야 원하는 표현에 도달할 수 있는 ‘고감도’ 종이다.
박 화백은 이번 전시 작품의 대부분을 원융사상의 발생지인 경주 남산의 작업실에 칩거하며 제작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옥판선지에 그린 가로 8m, 세로 2.5m의 대작 ‘불국설경(佛國雪景)’. 오래된 소나무 뒤로 살포시 들어앉은 눈 덮인 고찰의 고즈넉한 정취를 꼼꼼한 붓질로 표현한 역작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과 아교를 섞어 그린 ‘고미(古美)’ 연작, 지난 9월 터키 마르마라대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출품작도 함께 선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금석문이 조형 요소로 삽입돼 서예정신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박 화백은 6·25전쟁 때 빨치산에게 왼팔을 잃었다. 남들이 구분하는 왼팔 오른팔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로 통합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다”는 그는 이제 종이에 그리는 대상들 사이의 원융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 속에 예술을 녹여 넣는, 보다 고양된 원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4일까지. (02)720-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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