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세 명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주말 점심 정도에나 세 식구가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고나 할까. 평일 아침에도 아이가 아빠랑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 아빠가 아이의 옷을 입혀주고... 그야말로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흔히 하는 표현으로, ‘출근 전쟁’을 치르다 보면 셋이 차분히 앉아 있을 시간은 1초도 없다. 그나마 남편이 나보다는 약간 출근 시간이 늦다는 이유로, 대부분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도맡아 해 주니 다른 워킹맘에 비해서 나의 사정은 조금은 나은 편일 터.
그런 때문에 셋이 한 자리에 있으면 “엄마, 아빠, 지오. 세 식구”를 유난히 강조하는 우리 가족이다. 종종 아이는 한 팔로는 아빠의 목을 안고, 다른 팔로는 엄마의 목을 안아 토닥거리며 “세 식구네”하며 함께 있는 시간을 행복해한다. 출근길에 차를 향해 걷다 제 아빠가 조금이라도 빨리 걸어가면 셋이 보조를 맞춰 걷자고 떼를 부리기도 한다.
아이가 세 식구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가슴 깊이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적기에, 같이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생각한다는 점은 감사하지만, 사실 엄마 아빠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아이가 이 시간에 얼마나 갈급해할지 짐작해보면 심장이 쓰라린 기분마저 든다.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도 있듯, 다행히 아이에게는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들이 있다. 주말 저녁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만나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지오, 네 식구네!”하고 세어보는가 하면, “엄마, 할머니, 지오, 이렇게 해도 세 식구네!”하면서 나름대로 시시각각 가족의 범주를 바꿔 생각하며 웃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네 명이나 되는 고모 할머니들까지 한 사람씩 “보고 싶다”고 할 정도인 걸 보면, 지오에게는 가족의 개념이 상당히 확장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빠”라고 답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 외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누나 형까지 줄줄이 읊어대는 걸 보면 지오의 머릿 속 가족은 엄마 아빠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지오의 모습을 보면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나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친정엄마가 휴일에 “뭐 도와줄 것 없니?“라고 물으셔도 부부의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했던 얌체같은 딸이었다면, 이제는 일을 하며 아이를 키워가며 아버지나 고모에게 부탁하는 입장이 되면서 고모 할머니들과 만나는 시간이 즐겁고 감사한 ‘지오 엄마’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지오 덕분에 효녀가 되기도 한다. “이태원 할머니랑 전화할래”하면 연결을 해 주다 “지난번 담궈주신 깍두기 잘 먹었어요”라고 뒤늦게 인사를 챙기게 된다. 지오가 싹싹한 조카로 엄마를 둔갑시키는 셈이다. “그냥 집에서 알아서 먹을게”라는 외할아버지에게 “우리집에서 식사하세요”하고 세 번씩이나 전화를 건 덕에 혹여나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친정아버지께서 마지못해(?) 우리집에 오신 적도 있다. 지오가 아버지께 따뜻한 밥을 해 드리는 효녀로 엄마를 포장한 셈이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에너지가 소진된 상황에, 집에 가면 사실 손가락 하나도 들 기운이 없는 듯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자그마한 사랑의 기운들이 새로운 밧데리가 되어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순간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감당하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는 육아. 그 고생에 비하면 작지만, 사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의 힘. 그것이 바로 내가 후배들에게 ‘여자로 태어나서 아이는 꼭 낳아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재원 < 텐아시아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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