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의 재발견…보스 대변하는 '회사 실세'

입력 2013-10-31 21:04   수정 2013-11-01 03:47

스케줄 관리부터 상사 이혼서류 작성까지

인사이드 Story

커피나 타던 시절은 옛말…상사 성공위해 24시간 뛰어
역할 커지며 보수도 껑충…억대 연봉 비서 수두룩
출근길 상사 손에 들린 책, 저녁때는 사봐야 좋은 비서



[ 김보라 기자 ]
미국 미디어그룹 NBC유니버설에서 일하는 단드라 갈라자는 매일 새벽 4시 잠에서 깬다. 맨 처음 하는 것은 상사가 아침 비행기를 제대로 타는지 확인하거나 그가 좋아하는 땅콩 시리얼, 페퍼민트향 사탕 등의 간식거리를 챙기는 일이다. 출근길에 상사 옷차림을 점검하고, 하루 스케줄을 정리하고,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은 뒤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잠시도 상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그의 직업은 에드워드 쉰들러 회장의 곁을 10년째 지키고 있는 수석비서. 갈라자는 “비서는 마치 자녀의 성공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최고경영자(CEO)들의 스케줄 관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오히려 ‘베테랑 비서’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상사를 위한 스케줄 관리에서 기밀 문서 보관, 애완동물의 건강관리, 기념일 선물 주문, 이혼 서류 작성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마치 그림자처럼 경영인의 일상을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전문 비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 단체인 ‘CEO비서연합(EAO)’이 생겨날 만큼 비서들이 기업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AO의 회원 수는 현재 1000명이 넘는다.

전문 비서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아니카 프라곳 전 페이스북 창업자 비서다. 그는 지난 3월까지 7년 이상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오른팔이었다. 48시간 전에 통보 받고 350명이 참석하는 이색파티 준비에서부터 지난해 저커버그와 프리실라 챈의 비밀 결혼식 준비를 도맡아 화제가 됐다. 당시 저커버그 결혼식을 사전에 안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그는 저커버그의 비서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정례 회의 준비는 물론 CEO가 말한 것을 임원들이 이해했는지 재차 확인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저커버그가 즐겨 입는 후드티도 따라 입었다는 그는 눈빛만 봐도 저커버그가 뭘 원하는지 다 알았다는 게 후문이다. 프라곳은 “예전에 비서란 짧은 치마 입고 커피나 타고 시키는 일이나 하던 사람이었지만 요즘엔 회의에 참석하고 상사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프라곳 외에도 사진공유사이트 핀터레스트에서 CEO와 디자인책임자의 외교사절 역할을 하는 미셸 디지아코모, 닐트 소프트웨어의 트레이 스카파 등은 대표적인 베테랑 비서로 꼽힌다.

프라곳의 연봉은 13만5000달러에 보너스 30%였다. 주식으로 받은 옵션까지 합하면 다른 임원들 못지않다. 멜바 던컨 던컨그룹 CEO는 연봉 7만5000~17만5000달러의 고위급 임원 비서만을 뽑았다. 국제 문제와 경제 흐름에 밝아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서를 원했기 때문이다. 많은 비서들이 경영학 석사학위 소지자거나 법대 졸업자였다.

비서가 말하는 뛰어난 비서의 자질은 뭘까. 베테랑 비서들은 “적극성과 신중한 태도”라고 입을 모은다. 10년간 리먼브러더스 전 CEO 피터 피터슨의 비서로 일했던 던컨은 “상사가 아침에 책을 들고 출근하면 저녁 퇴근길에 같은 책을 샀다”며 “그가 책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의 관심사를 알아두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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