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며 얻은 경험 살려 만든 앱…환경부 의무사용 제품으로 선정
명품백 비 젖게 하고싶지 않은 심리 포착…레인커버로 1000만원 매출 올려
창업에 관심있는 여성 매우 많아…아이디어 교환·검증 받은 좋은 기회
[ 최규술 기자 ]
“젊은 여성이 사업한다고 하면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어요.” “여성 사업가들에게 가장 큰 적(敵)은 시금치(시댁식구들)래요. 하하.”
한국여성벤처협회와 한국경제신문이 여성 벤처창업자와 예비창업자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3차에 걸쳐 진행한 ‘여성 벤처창업 챌린지 캠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유미 엄청난벤처 대표(35)와 최수민 지파공 대표(22·숙명여대 경영학과 4년), 진실 팬시그라피 대표(26). 이들은 여성 사업가들의 고충 한마디 한마디에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쳤다. 칼리 피오리나 같은 여성 사업가를 꿈꾸는 세 사람의 사업 얘기를 들어봤다.
○이유미 엄청난벤처 대표, “실패가 보약이었어요”
이유미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단체급식 인원을 사전에 예측, 잔반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애플리케이션 ‘머글라우’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구내식당 이용자들에게 메뉴 선호도와 식사 여부를 조사한 뒤 조리하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단의 질(質)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다. “웨딩 뷔페나 회사 식당 등 집단급식소 음식물쓰레기 가운데 숟가락 한번 대지 않은 미배식 잔반이 23%나 돼요. 영양사는 음식이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 항상 많은 양을 준비한다는 점에 착안했어요.” 이 대표는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주부여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머글라우’는 효용성을 인정받아 환경부 의무사용 제품으로 선정됐다. 정부의 연구 용역과 과제도 맡는다. 최근 3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고 매출도 4400만원을 올렸다.
그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말을 툭 던졌다. 20대 후반에 이미 평판조명 사업으로 연매출 130억원의 기업을 키운 전력이 있었던 것. 고려대 전기전자전파학부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도면을 직접 제작하고 특허 같은 비전문 분야 일까지 혼자서 처리했다. 사업이 워낙 잘돼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기술협력 제안도 거절했다.
그게 문제였다. 대기업의 특허 우선권에 밀려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기업과 안 되는 게임을 벌인 게 실수였다”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파산 후 우울증을 앓았다. 조명은 건설 분야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 기술이 좋아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는 점 등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4년 정도 직장생활을 해 온 그는 올 들어 다시 사업 의욕을 되찾고 캠프에 참가했다.
‘뜬구름 잡는 일 그만하고 공부(박사과정)해 편히 살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재기전을 시작했다. “창업 캠프를 통해 잊어버렸던 사업 감각을 다시 찾기 시작했어요. 제 DNA는 월급쟁이가 아닌가 봐요.”
○최수민 지파공 대표, “창업은 ‘나’를 찾는 일”
대학생 중심으로 이뤄진 2차 캠프에서는 최수민 지파공(지역을 파는 공간) 대표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손수 만든 요리와 수제품, 재능을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몰을 사업 아이템으로 제시했다. ‘공유경제’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학교 창업보육센터에서 인턴을 마친 그는 국내 첫 비즈니스 모델인 지파공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받기 위해 캠프에 참가했다. “학교에서 벤처창업론을 수강하는 많은 학생이 창업이 아닌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수업을 듣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 창업에 관심있는 여성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최 대표는 친구들에게 사업 아이템 얘기를 하면 “토익 공부나 하라”는 타박을 받고는 했다. 토익이 뭔지 궁금해서 딱 한 번 응시했지만 남과 같은 길을 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나’를 찾기 위해 경험을 쌓고 있다. 대학 2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필리핀 오지마을을 방문, 1년간 구호활동을 벌이며 화상 입은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후에는 홍콩으로 날아가 현지 대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혔다. “외국 대학생들은 우리나라처럼 취업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취업 원서 100장을 제출하는 것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진실 팬시그라피 대표, “비 내린 날의 고생이 결실”
진실 팬시그라피 대표는 방수 기능과 디자인이 예쁜 가방용 레인커버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보였다. 사업 준비를 위해 지난 여름 석 달 동안 비만 오면 거리로 뛰쳐나갔다.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가방 멘 행인들을 찍으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고 학교 정문 경비 아저씨에게 혼나서 울기도 했어요.”
이 같은 노력으로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불투명 풀커버 아이템이 가방의 디자인을 살리면서 비를 막아주는 반투명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된 것. “그걸 돈 주고 살 만큼 예쁠까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하지만 제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어요.”
일본 오사카예술대 디자인학과를 휴학 중인 진 대표는 일본과 독일의 스타트업 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면서 사업에 눈을 떴다.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인 ‘포스코 벤처파트너스’에도 2차까지 진출했다. 용기를 얻은 그는 지난 8월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을 포함해 3명이 영업과 디자인, 기획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시제품으로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주고객층은 명품백을 지닌 젊은 여성층. 최근에는 기업체 선물용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사업을 꿈꾸는 비슷한 여성들끼리 아이디어를 교환하다 보니 공감대가 넓게 형성됐다”며 “특히 내 사업 아이템을 캠프 참가자들과 선배 CEO, 심사위원들로부터 검증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내년에는 성공한 경영자들의 조언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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