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한 국가의 경제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축이 성장을 설명하는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만 저축없이 성장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가 성숙되기 전까지 높은 저축은 높은 투자→높은 성장→높은 저축으로 잘 순환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그랬고, ‘기적의 나라’ 한국이 그랬다. 가계와 기업에 의한 내부 저축이든, 개방경제로 들어온 외부 저축이든, 저축은 자본축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축과 자본축적이 성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나라가 있다. 바로 지금의 중국이다.
#급성장 중국, 저축 '최고'
지난 30여년간 연평균 10%대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총저축률(가계+기업+정부의 총저축액을 총가처분소득액으로 나눈 비율)은 얼마나 될까? 중국 통계에 따르면 작년 총저축률은 무려 53%에 달한다. 중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저축의 나라라는 일본과 그에 못지 않았던 한국의 총저축률이 한창 성장기에 40%를 기록,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지만 중국은 한 수 위다.
중국이 높은 저축률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도자 등소평이 1978년 개혁개방 경제를 천명한 이래 국내총생산(GDP)은 급증했다. 최근 중국의 연간 GDP 규모가 약 6조달러인데 저축률 50%를 적용하면 연간 저축규모는 3조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연간 무역액(수출+수입)이 1조달러인 점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저축돼 있는 셈이다.
저축된 돈은 투자로 이어진다. 기업자금으로 대출되고, 신규 기업이 창업하는 데 투입된다. 사회 간접자본에 투자되거나, 금융산업자금으로 운용돼 중국 금융을 세계화하는 데 쓰인다. 중국 은행들의 총자산액이 2005년 40조위안에서 2010년 말 95조위안(15조달러)으로 늘어난 이유도 기업과 가계의 저축 때문이다.
중국에선 기업이 가계보다 저축을 많이 한다. 이유는 천연자원을 독점하다시피한 국유 기업들은 사기업과 달리 이윤 배당제도를 적용받지 않아 막대한 자금을 사내유보시킨다. 사내유보는 곧 기업의 은행저축을 의미한다. 이런 까닭에 기업 저축률은 1998년 13%에서 2008년 20%로 증가했다.
가계도 미래에 주택을 구입하고,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저축하는 정신이 생겨났다. 경제학자들은 40% 이상의 고저축률이 향후 10년 정도 더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경제가 더 성장한다는 얘기다.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선진국들처럼 성장률 자체는 차츰 낮아지겠지만 고저축을 통한 고투자와 고성장 구조는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저성장 한국, 가계저축 꼴찌
독일, 일본, 한국도 과거엔 고저축률을 자랑했다. 이들 3개국의 총저축률도 1970년대와 1980년대 40%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가계저축률도 높아서 1992년 독일 12.7%, 한국 23.0%, 일본 12.9%에 달했다. 2009년의 가계저축률이 독일 11.3%, 한국 3.2%, 일본이 1%대 미만으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20년 전의 저축률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독일은 가계저축이 기업저축보다 훨씬 많은 특징을 띤다. 가계와 기업의 저축을 100으로 봤을 때 가계(2000~2008년 평균)가 74.7%, 기업이 25.3%를 차지했다. 한국은 30.2% 대 69.8%, 일본은 26.7% 대 73.3%다. 이는 독일에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으로 보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미래를 불안하게 느낀 국민들이 저축을 늘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안좋은 징후는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1992년 23.0%에서 2000년 8.6%, 2006년 4.7%, 2008년 2.6% 등으로 하락속도가 가장 빠르다. 1960년대와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했던 장롱 속 통장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가계저축률이 얼마나 낮은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국가별 가계저축률과 전망’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OECD 23개국 평균 가계저축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4.0%, 2009년에는 6.6%였다. 조금 늘어난 것은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복지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가계들이 소비를 줄이고 여유자금을 비축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 이제 뉴질랜드(0.3%) 일본(0.8%) 이탈리아(3.4%) 등과 함께 가계저축률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OECD 국가 중 한국처럼 가계저축률이 급격히 하락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저축률은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때 높아졌다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소비 증가 등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강하다. 내일의 보상을 위해 마시멜로를 바로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정신이 이제 사라진 것일까.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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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개인빚 갚아주면…열심히 저축한 사람은??
이런 저런 이유로 빚을 진 사람을 도와주고, 열심히 일해 저축한 사람에겐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면 바른 사회일까? 빚을 진 사람 중에는 자기 책임 하에 투자하다 빚을 진 사람도, 집값이 오를 것에 대비해 집을 샀다가 금융 빚을 지게 된 사람도, 흥청망청 쓰다 빚진 사람도, 어쩌다 사기를 당해 빚을 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이런 사람을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할 때 돈은 어디서 날까? 국가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결국 국민 돈으로 국가는 빚을 탕감해주거나, 돈을 찍어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정의로운 것일까.
반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득의 일정 부분(1만원이든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집 살 돈을 아끼고, 먹을 것을 덜 먹고, 입을 것을 덜 입고 저축한 사람이 국가로부터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것일까. 아마도 이들이 낸 세금이 빚 탕감에 쓰인다면 국가는 부정의를 돕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선거기간 중 내건 ‘취약 계층 자활공약’에 따라 올해에만 건국 이래 최대인 60만명 이상에 대해 채무 조정을 해준다는 뉴스다. ‘개인 빚까지 나라가 갚아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10월 말까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캠코, 신용회복위원회 등 각종 기관을 동원해 60만2000여명의 개인 채무를 줄여줬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연말에는 서민 채무 조정이 62만~63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빚을 탕감해 준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더이상 자발적으로 빚을 갚으려 안 한다거나, 빚 상환을 늦추는 경향도 나타난다는 소식이다. 바로 모럴 해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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