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절상 방어' 나설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유럽 일본 등 중심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흐트러질 기미를 보였던 통화정책의 고삐를 다시 죄고 있다. 일단 양적완화 등과 같은 종전의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좋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뒤끝인 ‘애프터 크라이시스(after crisis)’와 ‘애프터 쇼크(after shock)’는 그만큼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제한’ 통화정책을 강화하거나 연장하려는 움직임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을 재추진할 뜻을 비쳤다. 재정위기 발생국의 국채를 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사주되 풀린 돈은 물가압력을 줄이기 위해 고스란히 환수하겠다는 불태화(sterilization)와 연계시킨 ‘재정적자 화폐화’ 정책이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당초 기정사실화됐던 출구전략보다 모기지증권(MBS)을 대상으로 한 양적완화를 유지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1차, 2차 양적완화와 달리 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고용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한다는 것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3차 양적완화의 핵심이다.
중심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푸는 정책을 재강화한다면 증시 앞날에 대해 밝게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월가에서는 현 주가 수준에 ‘비이성적 과열’ 논쟁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낙관론에 다소 힘이 더 실리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에서도 ‘올해 안에 코스피지수가 2300이 갈 것’이라는 뒤늦은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주가가 얼마나 더 상승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중심국 중앙은행의 종전 통화정책 재강화 패키지, 그중에서도 Fed 통화정책의 행간을 잘 읽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Fed가 고용과 연계시키면서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경제 현안을 풀어 가는 데 고용을 늘리는 과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남아 있는 정책 여지가 거의 없다. 고용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재정정책 여건은 추가 신용등급 강등이 경고될 정도로 악화됐다. 기준금리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제로(0)’ 수준이다.
버냉키뿐만 아니라 재닛 옐런 차기 Fed 의장이 양적완화에 의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처럼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가 취약한데도 양적완화에 의존하는 것은 경기 면에서는 두 가지 경로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부(富)의 효과’ 경로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위기 후유증으로 국민의 ‘디레버리징(부채감소·저축증대)’이 끝나지 않은 국면에서는 이 효과가 작게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자국통화 약세에 따른 수출진흥 통로다. 양적완화 추진 과정에서 풀린 돈은 캐리자금 형태로 신흥국으로 유입된다. 이때 신흥국 통화 가치는 절상돼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개선된다.
출범 이후 오바마 정부는 달러 약세 정책을 추진해 왔다. 최근 들어 Fed가 양적완화를 계속 고집하는 것도 본격적인 출구전략 추진을 앞두고 충분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특정국이 경기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경쟁국들에 전가된다. 대표적인 게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특히 달러화 같은 중심통화가 평가절하될수록 그 피해는 경제발전 단계상 한 단계 아래 국가에 집중된다. 중국 브라질 등 브릭스와 한국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의 달러 약세 정책에 따라 약화되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신흥국들이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미 Fed가 양적완화를 추진할 때마다 브라질이 주도가 돼 두 차례에 걸쳐 ‘환율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흥국들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출구전략 추진이 우려되면서 곧바로 자금이탈에 따른 부작용만 노출됐다. 신흥국의 외국자본 유입 규제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의 고도 파생금융기법에다 캐리자금 주도로 종전보다 자금유출입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출구전략 추진이 연기되면서 달러 약세가 재현됨에 따라 신흥국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중심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위기극복, 경기회복, 고용창출과 이에 따른 사회불안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많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흥국의 자산시장 거품과 환율전쟁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확산되고 있는 ‘제2의 유동성 장세’에 대한 지나친 기대보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양적완화에 따른 후유증을 동시에 감안하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해 보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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