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배리 린든’(1975)은 18세기 중엽을 배경으로, 사기도박을 일삼으며 상류사회를 기웃거리던 아일랜드 출신의 한 청년이 아름다운 여백작과 결혼해 꿈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몰락하고 마는 세 시간짜리 대작이다. 린든 여백작과 처음 마주 앉은 배리가 촛불 조명 속에서 도박을 벌이는 장면 앞뒤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삼중주 제2번의 2악장이 사용됐다. 별도의 조명장치 없이 촬영한 것으로 유명한 이 장면에서 슈베르트의 곡은 신비스러운 효과를 더욱 증폭시켰다. 한편으론 유머러스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울하며, 그러면서 무심한 듯한 면까지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이 곡의 독특한 매력이다. 한국 영화인 정지우의 ‘해피엔드’를 비롯해 토니 스콧의 ‘크림슨 타이드’,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에도 사용됐는데 각각의 느낌이 모두 다르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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