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와 장수 같다’는 속담이 있다. 청색을 입힌 단단한 기와를 만들어 큰돈을 번 장수의 이야기다. 그는 청기와 제조 비법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자식에게도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나자 청기와 제작법은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 같은 연유에서 특정한 기술이나 비법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독차지하려는 사람이나 기업을 청기와 장수에 비유하곤 한다.
사실 청기와 장수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핵심 기술’을 누가 선뜻 공개하겠는가. 다만 청기와를 만드는 결정적 비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제조 공정이나 노하우 정도만 전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른 기술자들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련 기술을 꾸준히 진화시켜 사회 전반에 이득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의 시대다. 과학기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지만 아직 소수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매년 2000여건에 이르는 새로운 특허가 나오는데 이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성과가 부진한 것도 한 사례다.
연구자의 땀과 열정의 결과물이며 국민의 세금을 투자해 얻은 결실이 ‘청기와 장수의 기술’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기초·원천연구개발 성과와 관련된 정보를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성과마루(//rnd.nrf.re.kr)’ 서비스를 본격 가동했다.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연구개발 성과의 구체적인 내용, 적용가능 분야, 기존 기술과의 차별성, 발전 가능성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기초·원천기술 분야 학문적 성과를 중소·벤처기업이 상품화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연구자들도 자신의 연구가 국민 삶에 보다 실질적인 보탬이 되도록 고민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자칫 청기와 장수의 기술로 머물 뻔한 수많은 기초·원천연구의 결실이 구체적인 상품으로, 서비스로 재탄생되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때 창조경제의 꽃 또한 활짝 필 수 있을 것이다.
이상목 <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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