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산확대·여론 악화
실리 노선 전환 잇따라
[ 이건호 / 최진석 기자 ]
노동조합의 상습적이고 고질적인 불법·과격 투쟁과 ‘떼쓰기’식의 억지 주장에 대해 기업들이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원칙 대응을 하면서 강성 노조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불법파업을 선동해 회사에 피해를 입힌 노조원에게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끝까지 책임을 묻는 등 기업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익이 없는 ‘묻지마’식 강경투쟁에 등을 돌리는 조합원도 늘어나 합리적인 노선으로 전환하는 노조가 잇따르고 있다.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노무총괄)은 10일 전화통화에서 “(현대차) 노조에서 변화가 시작됐다”며 “앞으로 국내 노동계 전반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생산 차질을 빚더라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했고 이는 무리한 파업을 이끄는 강성 노조에 대한 노조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노조원들이 강경노선보다 실리주의를 선택한 것은 △파업·특근거부로 얻은 것이 없고 △국내 공장의 경쟁력 저하로 내부 위기감이 높아진 데다 △명분 없는 파업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따가워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홍성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2팀 전문위원은 “기존 노조는 무리한 파업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며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돼 조합원들의 임금이 줄기 때문에 무파업이 더 낫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을 지낸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해외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노조의 묻지마식 파업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만도와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유성기업, 상신브레이크, 세아제강 등에서는 강성 노조가 세력을 잃으면서 노조원들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금속노조)을 탈퇴했다. ‘파업→직장폐쇄→파업 철회→금속노조 탈퇴’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탈퇴요건 등 절차상의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탈퇴를 결정했다는 점은 같다.
한라그룹 계열의 자동차부품업체 만도는 노조(당시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지난해 44일간 파업을 벌인 직후 조합원의 96%가량이 명분 없는 투쟁을 벌이는 노조 집행부에 반발해 새 노조를 출범시켰다. 정치투쟁 결별 등 합리적 노선을 표방하면서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만도 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두 차례(2008, 2009년)를 빼고 매년 파업을 벌인 강성이었지만 새 노조가 들어선 이후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임금교섭을 무분규로 타결했다.
중견 철강업체인 세아제강 노조는 지난 8월 말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9월엔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꿔가며 회사 측을 압박했다. 하지만 회사 측이 직장폐쇄로 맞서자 지난달 17일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 회사 노조는 최근 민주노총을 탈퇴했으며 이달 말 새 집행부 선출할 계획이다.
이건호/최진석 기자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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