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현 기자 ] ‘귀머거리가 된 개구리’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 과학자가 개구리 다리를 하나씩 떼어내면서 그때마다 ‘뛰어’라고 소리쳤다. 다리가 없어질수록 개구리가 뛰는 높이는 줄어들었다. 마침내 모든 다리가 제거된 개구리는 ‘뛰어’라는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과학자가 내린 결론은 “개구리는 다리가 모두 없어지면 귀머거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농협은 되고 마트는 안된다?
상품공급점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귀머거리 개구리 실험’을 연상케 한다. 그릇된 인식으로 본질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상품공급점 확장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대형유통업체들이 상품공급점을 통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집중적 질타 뒤에 이어진 발언이다.
그런데 이 논란은 출발점부터 이상하다. 상품공급점은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점포가 아니다. 대형마트와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식품과 공산품을 공급받아 파는 동네슈퍼일 뿐이다. 상품공급점이란 이름으로 누군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면, 엄밀히 따져볼 때 그것은 대형유통업체가 아니라 동네슈퍼라는 게 맞다.
도매상인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 있다. 대형마트가 농어민으로부터 농산물을 직접 사거나, 제조업체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동네슈퍼에 공급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물론 역대 정부가 모두 유통단계 축소를 추진했던 터다. 농어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농협이 지난 9월 경기 안성에 종합물류센터를 개장해 연 2조원어치의 과일과 야채를 직접 소매업자에게 전달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야 국회의원들은 유통단계를 축소한 상품공급점만 집중적으로 성토한다. 농협은 되고, 대형마트는 안되는 이유는 뭘까. 반(反)대기업 정서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라고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더 가관인 것은 대형마트가 개별 슈퍼에 상품을 공급하는 건 골목상권 침해지만, 슈퍼마켓 단체를 통해 물건을 대는 것은 괜찮다는 논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유통산업연합회가 지난달 협의를 마쳤고,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은 대형마트와 상품공급 계약을 조만간 맺을 예정이다. 물건을 싸게 공급받으려는 동네슈퍼의 요구 역시 무시할 수 없기에 나온 편법이다.
유통 논쟁 '귀머거리 개구리'
하지만 상황은 더 꼬일 것 같다. 현재 상품공급점으로 등록된 곳은 300여곳에 불과하다. 반면 단체에 소속된 동네슈퍼는 모두 6만곳이 넘는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받는 곳은 상당수 늘어날 게 분명하다.
이강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더 심각해진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받는 상품공급점(동네슈퍼)은 이 법에 따라 의무휴업을 해야 한다. 농어민과 소비자, 그리고 동네슈퍼 주인과 대형마트 모두가 손해만 본다는 결론이다.
상품공급점은 비틀리고 꼬이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래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정치인들은 우긴다. 본질이 왜곡된 ‘귀머거리 개구리’와 무엇이 다른가.
조주현 생활경제부장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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