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억지 아닌 성장부진 때문
정치공세 접고 경제활력 높여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dkcho@mju.ac.kr>
한국이 2010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효과적으로 타개했기 때문이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6%였다. 한국은 예상을 뛰어넘는 0.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역설적으로 정쟁과 포퓰리즘이 끼어들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순항은 거기까지다. 선거정국과 맞물리면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대체했다. 절제되지 않은, 경제적 논거가 결여된 경제민주화 담론이 그 사례다.
‘부자감세’ 논쟁은 비생산적인 정쟁의 전형이다. 부자감세는 민주당의 단골메뉴다. 부자감세에 대해 일반대중은 분노하게 돼 있다. 부자가 소득에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아 자신의 세금부담이 커진 것으로, 저소득층의 복지혜택이 줄어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국가 권력과 경제 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결탁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부자감세의 ‘프레임’ 효과는 이렇게 위력을 발휘한다.
민주당의 부자감세 논거는 이렇다. 노무현 정부 조세제도가 유지됐을 경우의 ‘가상’ 조세부담률과 이명박 정부 조세부담률 간의 차이를 경상 국내총생산(GDP)에 곱해 계산한 것이다. 조세부담률을 기준으로 5년 동안 99조5000억원의 부자감세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감세도 아닌 ‘부자감세’ 논리는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조세부담률이 낮다는 것은 민간부문의 지갑을 덜 얇게 하고 나라살림을 꾸렸다는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도 개념에 따르면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내려 조세부담률을 낮추면 ‘민간부문 경제활동 자유도’가 개선된다. 이명박 정부는 적은 국가 개입으로 정부살림을 효율적으로 꾸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높은 조세부담률에 상응하는 만큼 복지지출을 늘렸는가. 일반 정부 총지출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을 보면 이명박 정부(29.3%)가 노무현 정부(24.0%)보다 더 높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를 화두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램화하지 못했다. 조세부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정부’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성장률에는 어떤 효과를 냈는가. 노무현 정부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4.3%로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성장률 4.5%에 못 미친다. 이명박 정부 평균 성장률은 2.9%로 전 세계 평균치 2.6%보다 높다.
과거 민주당은 감세에 더 적극적이었다. 2002년에 고소득층의 최고 소득세율을 40%에서 36%로 대폭 인하했다. 법인세율도 지속적으로 낮췄다. 김대중 정부는 30%에서 28%로, 노무현 정부는 다시 25%로 낮췄다. 그런 민주당이 감세를 이유로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이중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감세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날선 공방은 “세계 어느 나라 정부가 빚 얻어서 부자감세해주고 대기업 세금 깎아주는가. 계속 부자감세해서 국가 부채를 늘리겠다는 것인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최근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권별 국가부채 규모는 김대중 정부 109조원, 노무현 정부 240조원, 이명박 정부 385조원이다. 그러나 아전인수식 국가부채 해석은 금물이다.
세금이 적게 걷힌 것은 부자감세가 아니라 성장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세수실적을 보면 경제성장률이 5%를 넘었던 2006·2007·2010년에는 세수가 목표치를 웃돌았다. 반면 신용카드 대란(2003), 글로벌 금융위기(2009), 대선과 총선(2012) 등으로 성장률이 뚝 떨어진 해에는 예외 없이 세수가 목표치에 미달했다.
정쟁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해 합리적 해결을 방해한다. 정치는 논리와 설득의 예술이다. 정치역량은 남을 비판해서 축적되지 않는다. 정치는 경제의 울타리여야 한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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