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하우스에 피아노 선율이 흐르면 사랑에 빠진 클라라가 나타난다

입력 2013-11-18 06:58  

해외여행

라이프치히 음악기행 <1>

슈만이 작곡하던 카페 바움, 클라라와 살던 슈만하우스
둘이 결혼한 세네펠트 교회에선 매년 음악 페스티벌



[ 문유선 기자 ]
슈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가다. 학교 음악시간에 청취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억지로 듣던 클래식을, 스스로 찾아 듣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슈만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독일어는 슈만이 작곡한 가곡을 들으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언어가 됐다. 슈만을 통해 아름다운 클라라와, 스승의 아내를 정서적으로 사랑한 순정의 브람스도 만났다. 슈만이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보고, 그가 살아가면서 느꼈을 다양한 감정의 진폭을 비슷하게나마 느껴 보기 위해 독일 작센 지방의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로 발길을 돌렸다.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연인

역시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랑이다.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는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단번에 알게 된다. 슈만과 클라라는 음악사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아이콘이 됐다.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외사랑까지 더해져 독일 낭만주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졌다. 후대의 누군가가 자신들이 만든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삶이 더 아름다워졌다고 느낀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슈만은 독일 작센 지방의 작은 마을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권유로 법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로 억압됐던 슈만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당시 라이프치히 최고의 피아노 교습 선생이었던 비크 박사를 만나면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개화됐다. 비크 박사의 딸이 바로 클라라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슈만은 스무 살의 아름다운 청년이었고 클라라는 열한 살의 어린 소녀였다.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크 박사는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딸을 혹독하게 교육해 연주여행으로 부와 명예를 축적하려던 야심가였다. 이런 야심찬 계획에 슈만까지 합세한다면 금상첨화였을 테니 슈만의 재능이 비크 박사의 눈에 든 건 당연하다. 그러나 슈만은 손가락 부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슈만은 작곡과 평론에 몰입했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슈만이 발행했던 ‘음악신보’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전기의 작곡가들이 대중으로부터 잊히지 않도록 하는 역할과 동시에 쇼팽과 브람스 등의 신진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기능을 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바이런과 리히터 등을 즐겨 읽는 문학소년이었던 슈만의 문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 잡지이기도 했다.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에 성공한 1840년은 슈만에게 ‘가곡의 해’로 불린다. 그의 가곡 작품의 반 이상이 1840년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8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슈만은 정신병에 걸렸고 클라라는 마지막까지 슈만을 지켰다. 슈만이 죽은 후 클라라는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평론하고 알리는 일에 매진했으며 슈만의 대부분의 작품은 클라라가 초연했다.

슈만의 자취를 따르는 길

카페 바움을 찾았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카페 바움은 4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왔다. 괴테, 베토벤, 나폴레옹, 슈만 등이 이 카페의 단골 고객이었으며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슈만이 ‘음악신보’에 게재할 평론을 집필했던 자리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슈만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맞는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쉽게도 이 자리는 예약이 필수다.

햇살을 받으며 야외에 앉아 음악의 도시가 전하는 정취를 마음껏 느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여기저기서 악기를 매고 바쁜 걸음으로 이동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음악의 도시 다운 풍경이다. 카페 바움의 1층과 3층에는 카페, 2층에는 레스토랑이 있으며 4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커피 박물관이 4층에 있다. 독일에서 가장 커피 맛이 좋다는 소문 그대로 커피가 정말 맛있다.

카페 바움에서 나와 어거스트 광장 방향까지 걸었다. 이 길을 쭉 따라 드레스트너 거리를 걷다가 인젤거리 방향으로 꺾으면 슈만 하우스에 이른다. 3층 높이까지 자란 녹음이 짙은 아름드리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크림색 건물의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듯 보인다. 이 건물 2층에서 슈만 부부가 결혼 후 4년간 살며 수많은 가곡과 ‘봄의 교향곡’ 등을 작곡했다.

현재 건물에는 박물관과 작은 콘서트홀, 클라라 슈만 학교가 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자 클라라가 환생한 듯한 차림의 아름다운 가이드가 반갑게 인사한다. 성악가인 그녀는 슈만과 클라라의 일상의 삶과 창작의 고뇌가 짙게 밴 공간들을 차례차례 설명한다. 두 사람이 교환한 서신과 사진은 물론 사용했던 집기와 악보 등이 전시돼 있다.

매년 9월 슈만 페스티벌 열려

당시 멘델스존이 피아노를 연주하던 공간은 지금도 그대로 복원돼 있다. 피아노 건반 위로 비치는 창문의 격자무늬를 응시하다 보면 빛이 만들어낸 그 작은 사각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 당시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모여 앉아 있던 한자리로 안착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독일어 소통이 가능하다면 슈만 하우스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작은 콘서트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주로 슈만과 클라라의 음악을 주제로 열리는 작은 콘서트는 해설과 연주를 병행하는 데 취재차 방문했다고 특별히 선보인 공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슈만 하우스 여기저기를 설명해주던 2013년의 아름다운 클라라는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1840년의 클라라가 되어 리히터와 바이런의 시와 슈만의 선율이 완벽하게 합일된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환상적이다.

슈만 하우스에서는 로버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결혼기념일과 클라라 슈만의 생일이 몰린 매년 9월 슈만 페스티벌을 연다. 라이프치히 인근의 작고 아담한 세네펠트 교회에서도 슈만의 생일에 맞춰 슈만의 음악을 공연하는 콘서트를 연다. 이곳은 슈만하우스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라이프치히 인근에 있는 작은 교회로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한 장소다. 아담하고 소박한 세네펠트 교회는 일부러 찾아갈 만큼 볼거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슈만과 클라라를 사랑하는 진정한 팬이라면 한번 들러볼 만하다.

라이프치히(독일)=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여행팁


현재 라이프치히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인천에서 직항을 운행하는 뮌헨,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등의 독일 주요 도시를 경유해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라이프치히 시내 중심부에선 영어 소통이 원활한 편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나이가 많은 세대나,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

슈만하우스의 관람시간은 수~금요일 오후 2~6시,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다. 가이드 투어는 일요일 오후 3시에만 진행하며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주거지역에 있어서 찾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개별여행자의 경우 주소(Inselstrasse 18, 04103 Leipzig)를 이용한 지도검색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것을 권한다. 자세한 공연 일정과 예약방법은 사이트(schumann-verein.d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 여행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독일관광청(germany.trave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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