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벗어나는 소상공인 "우리가 대표" 진흙탕 싸움
[ 안재광/김병근 기자 ]
중소기업 범위는 1966년 중소기업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정해졌다. 당시 기준이었던 ‘상시근로자 200명 이하 또는 자산 5000만원 이하(제조업 기준)’는 1982년 ‘근로자수 기준’으로 바뀌는 등 몇차례 크고 작은 개정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구분하는 체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소상공인지원법이 2011년 도입되고 중견기업법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제정되면 기업 분류체계는 소상공인-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계단식으로 바뀌게 된다. 중소기업의 양 끝에 있는 소상공인과 중견기업인들이 최근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다.
○중견기업 “규제는 없어야…”
중견기업들은 지난 2월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취임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협력사인 신영을 이끌고 있는 강 회장은 중소기업을 졸업한 직후 대출이 중단되자 ‘이건 아니다’ 싶어 중견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우오현 삼라마이더스(SM) 그룹 회장, 최진식 심팩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박진선 샘표 사장 등이 신 회장과 함께해왔다.
중견기업들은 특정 분야에서 십여년간 전문화로 커왔는데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된 이후 규제 대상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분개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대상에 중견기업들이 대거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기업 규모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기업공개 등을 통한 지분 분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중견기업들이 ‘경제 민주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크다.
강 회장을 포함한 중견기업인들은 “중소기업처럼 많은 지원을 해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대기업으로 간주돼 규제를 받는 것은 안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정치권을 움직여 지난 9~10월 ‘중견기업법 입법안’ 3건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발의됐다. 세부 내용에서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금융 및 세제, 연구개발(R&D), 인력 확보 등 중견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 회장은 지난 15일 ‘중견기업법 도입방향’ 토론회에 앞서 축사를 한 뒤 청중을 향해 갑자기 큰절을 하면서 ‘중견기업법 통과’를 부탁하기도 했다.
중견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하는 곳은 중소기업들이다. ‘중소기업 때 받았던 혜택을 중견기업이 돼서도 계속 누리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기업 1차 협력사들 가운데 중견기업이 많다는 점도 ‘2·3차 협력사’가 대부분인 중소기업들이 거부감을 갖는 이유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규모를 떠나 한 업종에 전문화되고 세계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기업에 정부의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덩치가 크다고 중견기업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은 주도권 싸움 중
소상공인은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미만(제조·광업·건설·운송업은 10인 미만)인 소기업이다. 정부 예산을 받는 대표단체(소상공인연합회) 설립 문제를 놓고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등이 이끄는 소상공인연합회창립추진위원회(이하 창추위)와 최승재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 이사장이 주도하는 소상공인연합회창립준비위원회(창준위)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로 “283만 소상공인을 대표할 적임자는 우리”라고 외치고 있다. 두 단체는 최근 통합을 위해 수차례 접촉했지만 통합단체의 임원 수와 선임 방식 등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추위 관계자들이 ‘중기중앙회가 창준위를 통해 소상공인 법정단체 설립을 방해한다’며 여의도 중앙회 빌딩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소상공인들이 법정 대표단체인 연합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체사업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아 위탁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원 수가 많아 정치적인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소상공인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이 “이달 말까지 통합 논의를 끝내라”고 두 단체를 압박하고 있지만 타협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 내부의 주도권 다툼에 골몰하다 보니 자신만의 정책 요구사항은 아직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안재광/김병근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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