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몸짓으로 꼬집은 현대인 초상

입력 2013-11-19 21:20   수정 2013-11-20 05:16

현대무용 '증발' 22~24일 무대에


[ 김인선 기자 ] #비너스 흉상을 오른팔에 낀 한 남자가 등장한다. 무대를 이리저리 걷더니 이내 석고상을 바닥에 내리친다. 쾅쾅. 석고상이 산산이 부서진다. 날카로운 조각과 파편들, 남자의 팔뚝에선 붉은 피가 흐른다.

#온몸을 다시마와 미역으로 치장한 남자가 있다. 비릿한 미역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자는 그 많은 미역을 입으로 물어뜯는다. 우악스럽다. 그리곤 끈적한 미역 위에서 탐욕스럽고 공포스러운 몸짓을 한다.

오는 22~2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현대무용 ‘증발’은 판타지를 깨부수는 작품이다. 미의 상징 비너스를 부수고, 남녀의성은 무섭게 표현된다. 지난 18일 현대무용 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스리허설에서 9명의 무용수는 깨고, 뜯고, 뒹굴면서 현대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우스꽝스럽게 뒤집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해외안무가 초청 공연인 이 작품의 안무는 이스라엘 이디트 헤르만이 맡았다. 그는 안무 경연대회인 ‘제16회 셰이드 오브 댄스’의 예술감독을 맡아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현대인들은 인터넷 광고 TV에서 만들어낸 엄청난 판타지에 둘러싸여 있다”며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며 살아가다 현재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과 ‘씬 시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래에 끌려다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지만 작품을 이끄는 정서는 B급 문화다. 때론 역설적인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선 우스꽝스러워 폭소가 나온다. 무용수들은 60분간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괴상한 의상과 분장을 하고 과장된 몸짓을 보여준다. 헤르만은 “나의 작업은 설교나 교육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과 장면들을 보여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무용수들은 연극처럼 대사도 한다. 헤르만은 “연극과 춤, 음악이 뒤섞인 총체적 공연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김동현 김호연 박명훈 박성현 이소진 이혜상 조현배 지경민 최민선 등 무대에 등장하는 무용수 9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헤르만은 무용수들과 지난 9월부터 하루 6시간 넘게 함께 보내며 셀프 비디오 찍기, 단어를 몸으로 표현하기 등을 통해 무용수 개개인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였다. 무대의 주요 오브제인 10원짜리 동전, 플라스틱 칼, 하이힐, 조각상 등은 무용수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3만~5만원. (02)3472-1420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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