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줄여야하는데 절차 때문에…"
취임 9개월 만에 사표 냈었지만 박원순 시장 반려…전폭 지원
2014년엔 빚 7조원대로 줄일 것
마곡부지 등 팔아 돈 거둘 때 장부상 자산만 23조 잠재력 커
[ 문혜정 / 이현진 기자 ] “민간 건설사들은 아파트가 안 팔리면 사장이 가격을 깎아서 처분하면 되죠. 그런데 공기업은 달라요. 절차와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대건설 사장 할 때와 너무 달랐죠. 특혜 시비 등 구설을 막고 정책의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면서도 엄청 답답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식 퓨전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 만난 이종수 SH공사 사장(64)의 첫 말문은 부임 초기 공기업 경영에서 느낀 애로사항에서 시작됐다.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민간기업의 속성이 몸에 밴 이 사장은 취임 9개월 만인 올해 초 서울시에 사표를 냈었다. 박원순 시장의 반려로 마음을 다잡고 공기업의 속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요즘은 편안해졌단다.
작년 5월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 사장은 30년 동안 현대건설에 몸담았던 ‘토종 건설맨’이다. 적잖은 세월을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보냈지만, 말씨와 행동이 부드럽고 편안한 것으로 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옛 현대건설 사장)까지 내로라하는 경영자들과도 세월을 함께 보냈다.
이 사장을 만난 민가다헌은 현대건설 사옥과 가까워 그가 예전부터 손님들을 모시고 종종 찾던 곳이란다. 그는 여느 때처럼 식당 측에서 추천해 주는 메뉴를 따랐다. 민가다헌의 대표 메뉴인 ‘국내산 한우 너비아니 그릴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대 현안은 ‘빚 줄이기’
이 사장은 올 초 서울시에 돌연 사의를 밝혔다. 서울시 전체 부채의 약 80%를 지고 있는 SH공사의 채무 감축 혁신안을 보고한 직후였다. 당시 서울시의 무리한 감축 요구 때문에 이 사장이 사표를 낸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그때는 좀 답답하고 자신이 없었어요. SH공사는 서울시장이 공약하고 추진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곳인데 신속하게 채무감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죠. 또 민간 건설사와 달리 공공기관은 실무적인 절차와 시스템을 다 거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제때 의사결정이 안 되고….”
이 사장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사의를 밝힌 이후 업무에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했다. 이 사장은 “많이 달라졌다”며 “서울시도 공사 건의사항을 적극 수용해주는 분위기이고, 우리 조직도 ‘무리다’라는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감과 열정이 한결 높아졌다”고 말했다.
올 들어 서울시는 SH공사의 아파트 분양시점을 공정률 80%에서 60%로 앞당겼다. 분양시점을 앞당기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어 현금 흐름을 크게 높일 수 있다. SH공사는 민간 건설사와 달리 공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아파트를 팔도록 한 이른바 ‘후분양 규정’을 적용받는다.
임대주택의 일부를 일반인에게 파는 경우 분양가 책정에도 어느 정도 자율권을 확보했다. 주변 시세의 75~80% 수준에서 받던 분양가 범위를 75~85%로 넓혔다. 지난해 은평뉴타운에 ‘악성 미분양’으로 남았던 중대형 아파트를 팔 때는 분양가를 최대 1억원이나 낮추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빈집으로 남아 있던 대형 아파트는 모두 세입자(분양 조건부 전세)를 들였다. 마곡 산업용지 분양 때는 박 시장과 함께 직접 ‘세일즈맨’으로 뛰었다.
현재 SH공사의 핵심 과제는 ‘채무 7조원대로 줄이기’와 ‘임대주택 8만가구 공급’이다. 박 시장의 핵심 공약이다. 서울시 전체 부채 22조8000억원 가운데 SH공사의 부채는 18조7500억원이다. 마곡지구나 문정지구, 은평뉴타운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하면서 쌓인 빚이다. SH공사로서는 가급적 빨리 미분양 부지를 팔아서 빚을 줄이는 게 ‘발등의 불’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사장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연초 13조5000억원이던 금융부채를 이미 1조원 이상 줄였고 연말까지 1조원 정도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채무를 7조원대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리가 아닌지 물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숨겨둔 열매’들이 좀 있다고 했다. 그는 “돈 들어올 데를 보고 일정을 잡는 것인데, 내년에는 그동안 ‘뿌려놓은 씨’에서 열매(부지매각 대금)를 거둘 때”라며 “마곡 산업단지에 기업들을 유치해 부지 절반가량을 팔았고 문정지구도 사실상 다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SH공사로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채무 감축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공사는 장부상 자산이 23조원에 달해 채무만 좀 줄인 후 체질을 강화하면 얼마든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H공사, 미래 밝다”
회사 사업 얘기가 한창인 사이 저녁코스의 전채 요리가 등장했다. 갓 구운 빵과 구운 새우전, 버섯 샐러드, 수프가 차례로 나왔다. 하얀 접시에 다채로운 색상으로 장식된 요리가 입맛을 자극했다.
‘퓨전 한식’의 매력은 주변에서 흔히 보던 식재료를 썼는데도, 낯선 외국 요리처럼 보이고 맛과 풍미가 새롭다는 점이다. 퓨전 한식집과 이 사장의 이미지가 왠지 어색하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의외의 얘기를 털어놨다.
“사실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 TBC(동양방송)에서 경영관리직으로 2년간 있었어요. 아무도 모르죠. 그런데 해외에 가고 싶어서 건설사로 옮겼지요. 외국 나가기가 제일 좋을 것 같아서요. 건설사에 간 뒤 중동 등 세계 여러 곳을 많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 사장은 해외 시장과 국제화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도 명절이면 해외 현장을 돌아보기 일쑤였다. 해외 수주를 늘려 현대건설을 국내 건설사 1위 업체로 되돌려 놓았다. SH공사를 경영하면서도 세계 여러 국가의 주택 관련 공기관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SH공사가 갖고 있는 임대주택이 13만6000가구, 곧 14만가구가 되는데 이걸 관리하면 연간 2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며 “앞으로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에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영국·일본처럼 노후화한 도시를 고치고 가꾸는 도시재생사업에 눈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선진국과 같이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은 유지하고, 철거할 것은 헐어내는 방식을 상황에 맞게 혼용해서 개발하는 구조”라며 “예컨대 옛 기차역도 없애기보다는 잘 다듬어서 박물관으로 재활용해 쓰는 것 등이 모두 도시재생의 한 가지”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도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묻자 웃음을 보이며 “이제는 (시대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메인 요리가 등장했다. 이 사장이 마늘과 발사믹 소스를 입혀 먹음직스럽게 구운 한우 너비아니를 한 입 물었다. 입 안 가득 육즙이 제맛이라며 권한다. 식당 매니저도 “이 요리는 한국인과 서양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라고 자랑을 곁들였다. 한국식 양념과 서양식 스테이크 요리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때문이란다.
SH공사는 현재 임대주택 사업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뒤섞어 똑같은 자재로 짓다 보니 과거보다 공사 단가가 높다. 임대주택 거주자들로부터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를 주변 시세 상승에 따라 올리기도 쉽지 않다. 빚이 쌓여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사장은 “선진국만큼 서울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높이고, 단가를 줄이면서 품질 좋은 집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SH공사의 목표인데 이게 쉽지만은 않다”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수익창출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장기적으로는 그동안 쌓아온 임대주택관리 노하우를 살려서 ‘민간아파트 위탁관리 용역’을 수행하거나, 국내 건설사들과 해외건설시장에 동반진출하는 방안 등 다양한 생존 해법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수 사장의 단골집 인사동 민가다헌 민병옥 저택 개조…한옥서 즐기는 퓨전 한식
서울 인사동에 있는 퓨전 한식레스토랑 민가다헌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개량 한옥의 원조인 ‘민병옥 대감(명성황후 집안의 후손)’의 저택을 개조해 전통 차와 퓨전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유행했던 서양식 ‘클럽’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 ‘신식 한옥’이다. 1930년대 화신백화점을 지은 조선의 대표적 건축가 박길용 씨가 설계를 맡았다. 지금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한옥의 분위기에서 한식 재료와 서양 식단이 어우러진 ‘퓨전 음식’과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어 외국인도 즐겨 찾는다. 대표 메뉴는 국내산 한우 너비아니 그릴 스테이크(5만5000원), 송로버섯 간장 소스의 메로 스테이크(5만원) 등이다. 점심(2만9700~5만5000원)과 저녁(7만9000~8만8000원) 모두 코스요리로 즐길 수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코스(7만원)도 준비돼 있다. 오후 12시~2시30분, 저녁 6시~11시까지 운영한다. (02)733-2966
문혜정/이현진 기자 selenmoon@hankyung.com
취임 9개월 만에 사표 냈었지만 박원순 시장 반려…전폭 지원
2014년엔 빚 7조원대로 줄일 것
마곡부지 등 팔아 돈 거둘 때 장부상 자산만 23조 잠재력 커
[ 문혜정 / 이현진 기자 ] “민간 건설사들은 아파트가 안 팔리면 사장이 가격을 깎아서 처분하면 되죠. 그런데 공기업은 달라요. 절차와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대건설 사장 할 때와 너무 달랐죠. 특혜 시비 등 구설을 막고 정책의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면서도 엄청 답답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식 퓨전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 만난 이종수 SH공사 사장(64)의 첫 말문은 부임 초기 공기업 경영에서 느낀 애로사항에서 시작됐다.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민간기업의 속성이 몸에 밴 이 사장은 취임 9개월 만인 올해 초 서울시에 사표를 냈었다. 박원순 시장의 반려로 마음을 다잡고 공기업의 속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요즘은 편안해졌단다.
작년 5월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 사장은 30년 동안 현대건설에 몸담았던 ‘토종 건설맨’이다. 적잖은 세월을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보냈지만, 말씨와 행동이 부드럽고 편안한 것으로 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옛 현대건설 사장)까지 내로라하는 경영자들과도 세월을 함께 보냈다.
이 사장을 만난 민가다헌은 현대건설 사옥과 가까워 그가 예전부터 손님들을 모시고 종종 찾던 곳이란다. 그는 여느 때처럼 식당 측에서 추천해 주는 메뉴를 따랐다. 민가다헌의 대표 메뉴인 ‘국내산 한우 너비아니 그릴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대 현안은 ‘빚 줄이기’
이 사장은 올 초 서울시에 돌연 사의를 밝혔다. 서울시 전체 부채의 약 80%를 지고 있는 SH공사의 채무 감축 혁신안을 보고한 직후였다. 당시 서울시의 무리한 감축 요구 때문에 이 사장이 사표를 낸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그때는 좀 답답하고 자신이 없었어요. SH공사는 서울시장이 공약하고 추진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곳인데 신속하게 채무감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죠. 또 민간 건설사와 달리 공공기관은 실무적인 절차와 시스템을 다 거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제때 의사결정이 안 되고….”
이 사장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사의를 밝힌 이후 업무에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했다. 이 사장은 “많이 달라졌다”며 “서울시도 공사 건의사항을 적극 수용해주는 분위기이고, 우리 조직도 ‘무리다’라는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감과 열정이 한결 높아졌다”고 말했다.
올 들어 서울시는 SH공사의 아파트 분양시점을 공정률 80%에서 60%로 앞당겼다. 분양시점을 앞당기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어 현금 흐름을 크게 높일 수 있다. SH공사는 민간 건설사와 달리 공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아파트를 팔도록 한 이른바 ‘후분양 규정’을 적용받는다.
임대주택의 일부를 일반인에게 파는 경우 분양가 책정에도 어느 정도 자율권을 확보했다. 주변 시세의 75~80% 수준에서 받던 분양가 범위를 75~85%로 넓혔다. 지난해 은평뉴타운에 ‘악성 미분양’으로 남았던 중대형 아파트를 팔 때는 분양가를 최대 1억원이나 낮추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빈집으로 남아 있던 대형 아파트는 모두 세입자(분양 조건부 전세)를 들였다. 마곡 산업용지 분양 때는 박 시장과 함께 직접 ‘세일즈맨’으로 뛰었다.
현재 SH공사의 핵심 과제는 ‘채무 7조원대로 줄이기’와 ‘임대주택 8만가구 공급’이다. 박 시장의 핵심 공약이다. 서울시 전체 부채 22조8000억원 가운데 SH공사의 부채는 18조7500억원이다. 마곡지구나 문정지구, 은평뉴타운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하면서 쌓인 빚이다. SH공사로서는 가급적 빨리 미분양 부지를 팔아서 빚을 줄이는 게 ‘발등의 불’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사장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연초 13조5000억원이던 금융부채를 이미 1조원 이상 줄였고 연말까지 1조원 정도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채무를 7조원대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리가 아닌지 물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숨겨둔 열매’들이 좀 있다고 했다. 그는 “돈 들어올 데를 보고 일정을 잡는 것인데, 내년에는 그동안 ‘뿌려놓은 씨’에서 열매(부지매각 대금)를 거둘 때”라며 “마곡 산업단지에 기업들을 유치해 부지 절반가량을 팔았고 문정지구도 사실상 다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SH공사로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채무 감축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공사는 장부상 자산이 23조원에 달해 채무만 좀 줄인 후 체질을 강화하면 얼마든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H공사, 미래 밝다”
회사 사업 얘기가 한창인 사이 저녁코스의 전채 요리가 등장했다. 갓 구운 빵과 구운 새우전, 버섯 샐러드, 수프가 차례로 나왔다. 하얀 접시에 다채로운 색상으로 장식된 요리가 입맛을 자극했다.
‘퓨전 한식’의 매력은 주변에서 흔히 보던 식재료를 썼는데도, 낯선 외국 요리처럼 보이고 맛과 풍미가 새롭다는 점이다. 퓨전 한식집과 이 사장의 이미지가 왠지 어색하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의외의 얘기를 털어놨다.
“사실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 TBC(동양방송)에서 경영관리직으로 2년간 있었어요. 아무도 모르죠. 그런데 해외에 가고 싶어서 건설사로 옮겼지요. 외국 나가기가 제일 좋을 것 같아서요. 건설사에 간 뒤 중동 등 세계 여러 곳을 많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 사장은 해외 시장과 국제화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도 명절이면 해외 현장을 돌아보기 일쑤였다. 해외 수주를 늘려 현대건설을 국내 건설사 1위 업체로 되돌려 놓았다. SH공사를 경영하면서도 세계 여러 국가의 주택 관련 공기관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SH공사가 갖고 있는 임대주택이 13만6000가구, 곧 14만가구가 되는데 이걸 관리하면 연간 2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며 “앞으로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에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영국·일본처럼 노후화한 도시를 고치고 가꾸는 도시재생사업에 눈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선진국과 같이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은 유지하고, 철거할 것은 헐어내는 방식을 상황에 맞게 혼용해서 개발하는 구조”라며 “예컨대 옛 기차역도 없애기보다는 잘 다듬어서 박물관으로 재활용해 쓰는 것 등이 모두 도시재생의 한 가지”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도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묻자 웃음을 보이며 “이제는 (시대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메인 요리가 등장했다. 이 사장이 마늘과 발사믹 소스를 입혀 먹음직스럽게 구운 한우 너비아니를 한 입 물었다. 입 안 가득 육즙이 제맛이라며 권한다. 식당 매니저도 “이 요리는 한국인과 서양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라고 자랑을 곁들였다. 한국식 양념과 서양식 스테이크 요리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때문이란다.
SH공사는 현재 임대주택 사업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뒤섞어 똑같은 자재로 짓다 보니 과거보다 공사 단가가 높다. 임대주택 거주자들로부터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를 주변 시세 상승에 따라 올리기도 쉽지 않다. 빚이 쌓여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사장은 “선진국만큼 서울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높이고, 단가를 줄이면서 품질 좋은 집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SH공사의 목표인데 이게 쉽지만은 않다”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수익창출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장기적으로는 그동안 쌓아온 임대주택관리 노하우를 살려서 ‘민간아파트 위탁관리 용역’을 수행하거나, 국내 건설사들과 해외건설시장에 동반진출하는 방안 등 다양한 생존 해법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수 사장의 단골집 인사동 민가다헌 민병옥 저택 개조…한옥서 즐기는 퓨전 한식
서울 인사동에 있는 퓨전 한식레스토랑 민가다헌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개량 한옥의 원조인 ‘민병옥 대감(명성황후 집안의 후손)’의 저택을 개조해 전통 차와 퓨전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유행했던 서양식 ‘클럽’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 ‘신식 한옥’이다. 1930년대 화신백화점을 지은 조선의 대표적 건축가 박길용 씨가 설계를 맡았다. 지금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한옥의 분위기에서 한식 재료와 서양 식단이 어우러진 ‘퓨전 음식’과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어 외국인도 즐겨 찾는다. 대표 메뉴는 국내산 한우 너비아니 그릴 스테이크(5만5000원), 송로버섯 간장 소스의 메로 스테이크(5만원) 등이다. 점심(2만9700~5만5000원)과 저녁(7만9000~8만8000원) 모두 코스요리로 즐길 수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코스(7만원)도 준비돼 있다. 오후 12시~2시30분, 저녁 6시~11시까지 운영한다. (02)733-2966
문혜정/이현진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