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예진 기자 ] 한국GM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스파크 EV’의 국내 판매가는 대당 3990만원이다. 같은 제품인데도 미국 수출용 차량 가격은 2900만원(약 2만7495달러)에 불과하다. 운송비와 관세를 더하면 미국이 훨씬 비싸야 하는데 국내보다 1000만원 이상 싸다.
어찌 된 일일까? 한국GM 관계자는 “미국은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면서 판매 경쟁이 치열해져 가격을 전략적으로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닛산 리프(2만9700달러), 미쓰비시 아이미브(3만달러), 피아트 500E(3만3200달러) 등 중소형 전기차가 3만달러 안팎에 판매된다.
하지만 경쟁이 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제값’을 다 받고 있다. 최근 전기차를 내놓은 국내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한국에는 없던 상품이어서 제조업체가 매기는 것이 곧 값”이라며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업체들은 “차체 구성품과 배터리 외에 막대한 개발 비용이 투입돼 일반 가솔린차량보다 비싸다”고만 설명한다.
국내에서 팔리는 전기차 가격은 업체별로 들쑥날쑥이다. 기아자동차는 작년 말 전기차 ‘레이 EV’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4500만원으로 책정했다. 레이 가솔린 모델이 최고 1570만원이지만, 여기에 배터리 가격(2500만원)과 개발비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가 적정하다는 게 회사 측 얘기다.
그런데 기아차는 지난 9월 레이 EV 가격을 3500만원으로 1000만원 내렸다. “국내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는 보급을 늘리기 위해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전기차 ‘SM3 Z.E’를 4300만원에 내놓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값을 낮춘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전기차 값이 싸진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 1000만원씩 달라지는 ‘고무줄 가격’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급을 확산시키려면 우선 소비자들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한국 소비자만 봉’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게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보다 시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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