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열 기자 ]
기업가정신은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다. 도전·창의·혁신으로 대표되는 기업가정신은 단지 기업이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문화·사회를 아우르는 변화의 키워드다. 더 나은 것을 위해 혁신하고, 세계로 시야를 넓히고, 고난에 굴하지 않는 마인드는 역사 진화의 원동력이다. 한국은 현대그룹을 세운 고 정주영 명예회장, 삼성그룹을 일군 고 이병철 회장 등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경영자들이 있어 일제의 압박과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딛고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강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도 기업가정신으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다. 역사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진화의 중심엔 기업가정신이 자리한다.
#정주영의 도전-이병철의 통찰
“이봐, 해봤어?”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보여주는 단적인 말이다. 이 짧은 말에는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짓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이 담겨 있다. 그의 이런 신념은 학교 공부도 부족하고, 가진 돈도 없었던 가출 소년을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로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1970년 겨울.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조선소 부지를 찍은 항공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만으로 선박을 수주한 일화는 배짱과 뚝심으로 상징되던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의 배짱이 초석이 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오늘날 세계 1위 조선강국을 만드는 결정적 디딤돌이었다.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고, 중동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 공사를 수주하고, 현대·기아차를 세계 톱 5의 자동차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끊임없이 혁신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정신도 한국경제를 부흥시킨 대표적 사례다. 이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빛난 것은 1980년대 초 반도체투자 결정이다. 일본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대규모 투자 결정으로 오늘날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업체인 삼성전자의 성장 발판을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발휘된 것이다.
삼성의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3D(3차원) TV 등 다른 전자산업 발달의 초석이 됐다. 허허벌판 포항 영일만에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세운 박태준 창업자도 무에서 유를 창출한 대표적 기업가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 외에 ‘애국 마인드’가 컸다는 점이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은 세대를 달리하면서 수많은 벤처기업 창업가 등으로 이어졌다.
#잡스의 열정 "여전히 배고프다"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I am still hungry)”는 스티브 잡스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는 기업가정신의 또 다른 축이 열정임을 보여준다. 잡스의 기업가정신은 열정과 도전, 창의가 골자다. 또한 그는 기술과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시너지를 통해 애플의 가치를 무한히 끌어올린 인물이다. 퍼스널 컴퓨터(PC)로 새로운 역사를 쓴 컴퓨터 업계의 기린아이자 스마트폰이라는 통신과 소통혁명을 선도한 사람이다. 시대의 변화를 미리 읽는 통찰력, 지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는 불굴의 의지는 젊은 세대에게도 참다운 기업가정신을 일깨워줬다.
잡스가 기업인으로서 삶에서 보여준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또 그는 꿈에 대해 광적일 정도의 열정을 품었다. 그는 언제나 꿈을 말하고, 그 꿈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인재를 모아 꿈을 불어넣어, 잠재력을 자극하고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쳤다. 세계 제1의 창의적 최고경영자(CEO) 잡스로부터 배워야 하는 건 그가 보여준 결과물보다 꿈과 열정이다.
#위축되는 기업가정신
“기업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기업인은 국회에 불려다니며 준범죄인 취급을 받잖아요. 정치와 사회가 경제를 짓누르면서 기업가정신의 불씨를 퍼뜨리는 게 아니라 끄고 있어요.” 원로 경제학자인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지금은 기업전쟁 시대인데 한국 사회가 기업가의 중요성을 너무나 모른다”며 지적한 말이다.
송 교수의 지적대로 기업인들 스스로도 기업가정신이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로 6회째인 기업가정신주간(10월28~31일)을 맞아 한국경제신문이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기업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현재의 기업가정신은 10점 만점에 6.38점을 줬다.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수준이다.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시급한 과제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50.5%로 가장 높았다.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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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한국경제…생각을 바꾸면?
한국경제 ‘샌드위치론’은 부상하는 중국경제와 ‘아베노믹스’로 일컫는 엔화 약세를 무기로 한 일본 기업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한국경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경제가 중국과 일본의 틈새에 끼여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제조업 기술의 질주가 무섭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발전,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서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미래산업 분야에서 세계 정상권에 올라선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휴대폰, 디스플레이, 철강 등 한국 주력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기술력은 말 그대로 ‘턱밑’까지 따라왔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터널 끝이 보이고 있다. 엔화 약세와 기업들의 기(氣) 살리기가 골자인 ‘아베노믹스’로 일본경제에 온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 수출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기업으로선 그만큼 부담감이 커진 셈이다. 일본기업들은 점차 기력을 회복하는 데 반해 한국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인 ‘샌드위치’는 양면성도 있다. 양쪽에 끼여 숨쉬기가 곤란할 수도 있지만 양쪽을 잘 활용하면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일본 기업들의 기지개는 우리 기업들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중국 일본의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역시 기업가정신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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