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마차시대에 자동차 생각…기업가는 '미래 창조자'

입력 2013-11-22 16:59  

기업가정신이 답이다



프랭크 나이트(1885~1972)라는 경제학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확실성의 세계는 기업가가 필요없는 세상이다.” 세상이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소비와 생산 정보가 분명하다면 기업가들이 할 일은 없다는 의미다. 이 말을 살짝 뒤집어 보면 ‘기업가들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18세기초 경제학자 리샤르 캉티용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정치경제학자들이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에는 그래서 위험부담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 왜곡되는 기업가 정신

무엇인가를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사람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편견이 있었다. 기업가를 ‘가진 자’라거나 ‘잘 사는 자’라거나 혹은 ‘타인들로부터 빼앗아 성공한 자’로 보는 왜곡된 사고가 그것이다. 오늘날 대기업은 강자이며,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이분법적 시각,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착하다는 낙인찍기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사고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기업가란 누구인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결과다. 숱한 경제학 책에도 기업가를 별도로 다루는 장(章)이 없다. 현대사회에서 잊혀진 사람이 있다면 기업가일 것이라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프랭크 나이트 얘기로 돌아가 보면, 기업가는 위험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이다. ‘높은 위험, 높은 이윤’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예를 들어 마차가 주요 운송수단이던 시절에 차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주변에선 이 사람을 말릴 것이다. “말이 있는데 왜 재산을 털어 넣어 그런 쇠덩어리를 만들려고 하느냐” “차를 만들어봤자 누가 타겠느냐” “저 집 아저씨 미쳤다네….”

하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을 일으킨 헨리 포드(1863~1947)는 아랑곳 않고 차를 사치품으로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우리는 취직하자마자 차를 타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글로벌 대기업이 된 과정을 압축하면 이렇다. 강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나쁜 기업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세탁기, 전화기, 비데, 휴대폰, 오븐 등도 제2, 제3의 차들이다. 기업가들이 거둬들인 이윤은 이런 위험감수와 도전의 결과이며 소비자들의 선택의 대가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윤이 정당성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 기업가는 조정자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부르짖은 제레미 벤담은 “애덤 스미스가 안 좋아했던 사업가들은 부를 축척하기 위해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서며, 특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방법으로 전진한다”고 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1767~1832)는 기업가를 조정자로 봤다. “세상에는 특기를 가진 사람, 손재주를 가진 사람, 두뇌를 가진 사람, 돈이 많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업가는 단 한 푼의 자기 돈을 가지지 않고서도 이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 사업을 일구어내는 사람이다.” 기업가들이 없다면 손재주든, 두뇌든, 돈이든 사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그냥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저마다의 특기를 집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존재가 기업가라는 시각이다. 세이는 상품의 교환가치인 가격이 단순히 노동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기업가나 자본가를 착취계급으로 보는 주장이 근거 없음을 논박했다.

세이는 이런 기업가가 되려면 판단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가는 높은 학식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학식을 가진 사람들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활용하면 된다. 필요한 것을 판단하고, 특히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판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세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가란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은 확실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본능적인 감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확실한 시장센스-확고한 목표의식-일관성 있는 행동-사리분별 있는 용기 등을 덕목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 포착-판단-실천

경제학자 루트비그 본 미제스(1881~1973)는 “기업가란 아주 유별난 존재가 아니고 행동하는 인간의 부분집합”이라고 풀었다. 그가 주창한 행동하는 인간이란 목적지향적인 인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인간, 불만족스런 상태를 개선하려는 인간, 매사 자신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을 말한다. 이런 속성 탓에 기업가들에겐 현실안주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봤다. 항상 유동적으로 변하는 환경이 자신에게 끼칠 영향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고 예측함으로써 적응해가는 적극적인 인간이 기업가들인 셈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생산방법이나 생산기술을 가지고선 기업가들은 원하는 성과물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시장, 생산방법, 신제품, 수요 등을 찾아 끊임없이 승부를 거는 승부사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기존 질서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와 개성이 강한 튀는 사람”이라고 이해했다. 혁신활동, 신결합, 새로운 원료시장 획득, 새로운 조직 등을 통해 현재의 균형상태를 깨뜨려 나가는 사람이 기업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치 정치인처럼 자선활동에 주력한다면 그는 이미 기업가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가’라는 책을 쓴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기회를 포착하고 적시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포착-판단-실천’을 기업가 정신의 세 가지 주춧돌”이라고 말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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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vs 아리스토텔레스·애덤 스미스


조선시대 북학파의 한 사람인 초정(楚亭) 박제가(1750~1805)는 기업가의 중요성을 간파한 최초의 한국 학자였다고 할 만하다.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보다 2년 늦게 지구 반대편에서 출간된 ‘북학의(北學議)’에서 그는 상공업과 상인(오늘날의 기업가)의 가치를 꿰뚫어 봤다. 그는 “민생은 갈수록 궁핍해지는데 사대부는 팔짱만 낀 채 편안하게 지낸다”며 당시의 지배논리였던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질타했다.

그는 상인이 몇 곱절의 이익을 남기더라도 비난할 것이 없다고 역설했다. 상품을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운반해주는 게 상인의 역할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백성이 농사와 뽕나무 가꾸는 데서 이익이 많지 않음을 알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니, 자연히 이 때문에 미곡이나 포백의 값이 많이 오르고 물건들이 귀해지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라는 대목에서 이윤의 정당성도 피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환행위를 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들을 아주 비도덕적이라며 비난했다. 상인에 대한 나쁜 인식은 위대한 학자를 통해 18세기까지도 이어졌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도 상업과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기업가와 자본가에 대해선 지나치게 위험을 감수하는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기업가의 이윤에 대해서도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정당한 이윤’ 이하로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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