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삼성생명 본사서 시상식
[ 윤정현 기자 ] 시아버지는 대장암으로 투병했다. 시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둘째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유순자 씨(54)는 평탄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거동을 못 하는 시어머니를 20년째 수발하며 이웃 어르신들도 조용히 돕고 있다. 갖은 고생 끝에 충남 예산에서 큰아들과 함께 소 400마리를 키우고 있는 그는 지난 6일 삼성행복대상 가족화목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효부라는 주변 칭찬에 유씨는 “우애 깊은 동서와 친척들 덕분”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효행 실천과 효 문화 확산에 기여한 유씨를 올해 삼성행복대상 수상자로 뽑았다. 삼성행복대상은 기존 비추미여성대상과 삼성효행상을 합쳐 올해 처음 출범했다. 유씨는 27일 서울 태평로2가 삼성생명 컨퍼런스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상패 등을 받는다.
충남 예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상경했다. 그는 “당시 소 한 마리를 판 돈 80만원으로 집을 구했다”며 “일단 서울엔 왔지만 마땅한 기술이 없는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택시 운전이나 막노동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망원동, 삼양동, 길음동 등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고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 유씨는 “당시 갑자기 열이 나고 토하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가진 돈 200원을 털어 해열제를 사먹이는 게 전부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생활 3년 만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소를 팔아 마련한 방세로 다시 소를 샀다. 그 소가 7마리까지 늘며 형편이 좀 나아졌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시아버지는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둘째아들은 자전거를 타다 농수로에서 익사 사고를 당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그때 느꼈다”며 “그래도 남은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겠기에 다시 일어섰다”고 말했다.
아침에는 목장 일을 하고 낮에는 공장에서 선풍기와 전자레인지 코일 감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졌다. 시어머니는 수술을 받고 의식은 돌아왔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오른손만 겨우 쓸 수 있는 상태로 늘 누워 있어야 했다. 유씨는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간호하고 있다. 30대의 젊음을 그렇게 보내고 어느새 50대 중반이 됐다.
이런 일상에서도 유씨는 행복을 찾는다. 27년 전 한 마리로 시작한 소도 지금은 400마리로 늘었다. 큰아들은 어엿한 낙농 후계자가 됐다. 그는 “꼼짝하지 못하는 시어머니께 밥을 먹여 드리고 온 몸이 젖어가며 목욕시킬 때는 힘들지만 간병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새 손을 꼭 잡고 있다”며 “어찌 보면 시어머니가 나와 가족을 지켜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유씨는 요즘 혼자 사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도 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행복을 나누려는 것이라 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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