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 기자 레알겜톡] 만약에 게임이 없었더라면

입력 2013-11-27 10:55   수정 2013-11-27 11:02

<p>가수 정광태의 노래 중 '김치 주제가'라는 곡이 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낙으로 밥을 먹을까'라는 가사다. 게임업계가 '중독법'으로 뒤숭숭하고, 온라인 게임 시장은 요즘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붙은 가운데, '만약에 게임이 없었더라면 무슨 낙으로 살아왔을까' 상상해본다.</p> <p>우선 작게는 기자의 삶속에서 '게임'을 빼보겠다. 어릴 때는 뺄셈이 쉽다. 누구나 하나쯤은 있었던 '다마고치'와 빨간색 몸통에 회색 단추가 두 개 있는 흑백 '게임보이'만 빼면 된다. 문제는 20살 이후부터 시작된다. 25살 기자의 인생에서 게임을 뺀다면, 우선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사라진다.</p> <p>
더불어 게임을 주제로 작성한 보고서로 '참신하다'는 평을 얻으며 받은 수많은 A+ 학점 역시 빠지게 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거제도에 사는 사람과 게임을 플레이하며 친해질 수 있었던 인연도 사라진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 삼겹살을 먹었던 추억도 사라진다. 멍하니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해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p> <p>2013년 2월 25일에는 '게임톡 입사'가 아니라 '자소서(자기소개서) 작성'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성을 찾아 헤매면서 찾아도 보이지 않는 '나의 길'에 좌절을 더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어쩌면 취업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데나 랜덤으로 자소서를 투하해 '카드값을 갚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p> <p>퇴근 후 엄마랑 나란히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서로 클로버를 주고받으며 '나 100만점 돌파한 것 봤어?', '도대체 코뿔소는 어떻게 해야 나와?'라는 잡담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잡담을 하는 일 또한 사라질 것이다. 꽉 찬 기자의 인생에 커다란 틈이 생겨버리는 것이다.</p> <p>어떤 이는 '그 시간에 독서를 하거나,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잖아'라고 다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두부 스테이크는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안심 스테이크가 될 순 없다. 소위 말하는 '우아한(?) 여가 생활'로 채울 수 있는 틈도 있지만, 게임으로만 해소할 수 있는 갈증은 분명히 있다.</p> <p>그렇다면 눈을 글로벌로 돌려보면 빼야할 부분은 더 많아진다. 게임이 없다면, 전 세계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즐길 수 있는 '블리즈컨', 'E3', '게임스컴', '도쿄게임쇼' 등의 수많은 화려한 게임 축제도 사라진다.</p> <p>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진다. '리니지' 소설 속 감동은 (게임 속에선 볼 수 없고) 오롯이 글로만 느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로 게임이 모태가 되어 대박을 터뜨린 '툼 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 등의 영화도 볼 수 없다.</p> <p>할아버지를 사별하고 슬픔에 빠져 외로움을 느끼는 할머니의 대화 상대도 사라지게 된다.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족과 소통을 하며 마음 둘 곳을 찾은 할머니의 소소한 놀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 제주도에 사는 '리니지' 마니아 송계옥(73) 할머니
</p> <p>또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프로그래머 아들이 할 수 있는 일도 하나 사라진다. 알츠하이머는 증세가 악화되지 않고, 병을 늦추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게임을 빼버린다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놀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 링크투모로우 하나용 개발자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게임
</p> <p>용돈을 받아쓰는 탓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여가 시간도 달라진다. PC방 이용 시간은 보통 1000원이다. 하지만 보통 커피 한 잔이 3000원, 영화 관람료는 6500원이다. 게임이 없다면 가성비로 볼 때 짧은 시간동안 화끈하고 저렴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p> <p>물론 게임에 대한 쓴소리와 우려도 나온다. 과몰입과 선정성, 폭력성 등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일상의 뼈대에 붙은 살이 아니라, 단단한 뼈가 된 것이다. 만약에 게임이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은 마치 골다공증 걸린 뼈처럼 구멍이 뻥 뚫려있지 않을까?</p> <p>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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