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60) 인플레이션의 추억

입력 2013-11-27 21:00   수정 2013-11-28 04:19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


아베 일본 총리 취임 1주년에 즈음해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기 회복을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의 평가가 이어졌다. 때마침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미국과 유럽에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비되는 개념으로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 현상을 일컫는 인플레이션을 들긴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과 동반되는 생산 감소나 실업 상승 등 경기침체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이 몇 년씩 계속된다면 경제가 가라앉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물가가 오르는 것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낫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 소득에 변화가 없을 때 물가가 떨어지면 전보다 많은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물가가 내리면 구매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떨어지고 경기가 침체하면 물가뿐만 아니라 소득도 감소하게 된다. 게다가 경제가 성장하고 그에 따라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이 목표 물가상승률을 0%가 아닌 2%대로 설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의 진짜 문제 중 하나는 소비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한국도 집값 하락 기조에 매매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를 미루게 되고 이는 경제 전체의 소비 감소로 연결돼 생산과 소득이 위축된 결과 더욱 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이 10년도 훨씬 넘게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헤맨 것을 보면 소비 위축은 경제가 늪에 발을 담그는 격임을 알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무제한 돈풀기’를 선언한 것도 물가가 곧 오르리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려는 이유가 컸다.

게다가 디플레이션은 채무자들에게 빚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예컨대 빚의 명목적 이자율이 5%일 때, 물가상승률이 3%이면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을 감안해 5-3인 2%가 실제 부담하는 이자율이 된다. 그런데 반대로 디플레이션으로 물가상승률이 -3%가 되면 같은 명목이자율에 대해 실질이자율은 5-(-3)인 8%가 돼 빚에 대한 실질적 이자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계부채 규모가 큰 상태에서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일본처럼 지긋지긋한 장기 경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 한국에 디플레이션이 올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가라앉는다면 수출 감소로 시작되는 연쇄적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다. 한국 가계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가격에 회복 조짐이 없는 터라 미국과 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걱정스럽다. 설마설마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그리워할 날이 올까 불안하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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