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정복자 / 에드워드 윌슨 지음 /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416쪽 / 2만2000원
[ 박한신 기자 ]
외계인 과학자들이 300만년 전 지구에 왔다면 꿀벌, 흰개미, 잎꾼개미 등 성공한 사회 체제를 이룬 곤충들을 보고 놀랐을 가능성이 높다. 희귀한 영장류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봤겠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떠났을 것이다. 지난 3억년간 특별한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안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한 종의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뇌의 크기는 두 배가 됐고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인도,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지금부터 1만5000년 전에는 알래스카를 거쳐 남북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3000년 전쯤 태평양의 섬들로 간 그들은 서기 1200년경 하와이, 이스터 섬, 뉴질랜드로 이어진 삼각지대에까지 닿았다. 인류가 ‘지구의 정복자’로 우뚝 선 것이다.
‘통섭의 과학자’로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 에드워드 윌슨의 신간 《지구의 정복자》는 지구를 정복한 인간의 진화와 인간이 이뤄온 사회성의 역사, 이를 둘러싼 생물학적 논쟁, 문화와 언어, 도덕과 종교, 예술에 이르는 방대한 범위의 역사를 다룬 역작이다. 통섭의 대가답게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깊은 시각으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답한다.
책은 폴 고갱이 1897년 타히티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 앞에서 시작한다. 고갱은 이 그림 왼쪽 위 구석에 제목을 적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책은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윌슨의 답이다. 물론 읽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집중해서 꼼꼼히 그를 따라가다 보면, 책 한 권에 얼마나 크고 넓은 내용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논쟁적인 작품이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막 가져온 따끈따끈한 생물학적 현안”이라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윌슨의 답 기저에 깔려 있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은 현재 학계에서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개미와 같은 ‘진사회성 동물’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세대로 이뤄진 집단 구성원들이 분업·협업하며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이라는 얘기다. 현대 진화생물학계의 주류 학설이며 스스로도 추종했던 ‘혈연 선택’ 이론에 다시 반론을 제기한 것. 혈연 선택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유전적으로 가까울 때 협력적이라는 것으로, 이 이론이 확장된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윌슨은 이에 대해 “역동적인 진화의 과정을 기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다수준 선택’ 이론을 내세운다. 이기적인 것과 비(非)이기적인 것이 서로 충동적으로 충돌하는 게 ‘인간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인간 조건은 우리를 만든 진화 과정들에 뿌리를 둔 인류 고유의 혼란이다. 우리 본성에는 최악의 것과 최선의 것이 공존하며, 앞으로도 영구히 그럴 것이다. 최악의 것을 빡빡 닦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은 또 다른 지구의 정복자인 개미와는 달리 파괴적인 본성 탓에 정복한 지역의 다른 생명체를 파괴해왔다.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윌슨은 희망을 말한다.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꿈은 마침내 이곳 지구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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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신 기자 ]
외계인 과학자들이 300만년 전 지구에 왔다면 꿀벌, 흰개미, 잎꾼개미 등 성공한 사회 체제를 이룬 곤충들을 보고 놀랐을 가능성이 높다. 희귀한 영장류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봤겠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떠났을 것이다. 지난 3억년간 특별한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안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한 종의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뇌의 크기는 두 배가 됐고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인도,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지금부터 1만5000년 전에는 알래스카를 거쳐 남북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3000년 전쯤 태평양의 섬들로 간 그들은 서기 1200년경 하와이, 이스터 섬, 뉴질랜드로 이어진 삼각지대에까지 닿았다. 인류가 ‘지구의 정복자’로 우뚝 선 것이다.
‘통섭의 과학자’로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 에드워드 윌슨의 신간 《지구의 정복자》는 지구를 정복한 인간의 진화와 인간이 이뤄온 사회성의 역사, 이를 둘러싼 생물학적 논쟁, 문화와 언어, 도덕과 종교, 예술에 이르는 방대한 범위의 역사를 다룬 역작이다. 통섭의 대가답게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깊은 시각으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답한다.
책은 폴 고갱이 1897년 타히티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 앞에서 시작한다. 고갱은 이 그림 왼쪽 위 구석에 제목을 적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책은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윌슨의 답이다. 물론 읽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집중해서 꼼꼼히 그를 따라가다 보면, 책 한 권에 얼마나 크고 넓은 내용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논쟁적인 작품이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막 가져온 따끈따끈한 생물학적 현안”이라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윌슨의 답 기저에 깔려 있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은 현재 학계에서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개미와 같은 ‘진사회성 동물’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세대로 이뤄진 집단 구성원들이 분업·협업하며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이라는 얘기다. 현대 진화생물학계의 주류 학설이며 스스로도 추종했던 ‘혈연 선택’ 이론에 다시 반론을 제기한 것. 혈연 선택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유전적으로 가까울 때 협력적이라는 것으로, 이 이론이 확장된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윌슨은 이에 대해 “역동적인 진화의 과정을 기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다수준 선택’ 이론을 내세운다. 이기적인 것과 비(非)이기적인 것이 서로 충동적으로 충돌하는 게 ‘인간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인간 조건은 우리를 만든 진화 과정들에 뿌리를 둔 인류 고유의 혼란이다. 우리 본성에는 최악의 것과 최선의 것이 공존하며, 앞으로도 영구히 그럴 것이다. 최악의 것을 빡빡 닦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은 또 다른 지구의 정복자인 개미와는 달리 파괴적인 본성 탓에 정복한 지역의 다른 생명체를 파괴해왔다.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윌슨은 희망을 말한다.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꿈은 마침내 이곳 지구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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