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창 기자 ]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놓고 한국 미국 일본이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집단 자위권 갈등은 손잡은 미국과 일본, 이에 반발하는 중국과 한국이 대척점에 선 모양새다. 한·미 간에도 미묘한 틈새가 생겼다. 과거사 문제엔 한·중 쪽과 일본 사이에 전선이 형성돼 있다. 게다가 한국은 아시아의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혈맹 미국과 최대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모양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각 갈등구조다.
갈등의 이면엔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패권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선제공격을 한 건 미국이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펴고 있는 오바마 정권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공개 지지했다.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견제를 통해 아시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B-52 폭격기를 띄우고 항공모함을 급파한 것은 미국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갈등 현안 철저히 분리대응해야
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들고 나온 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 1차 타깃이지만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면에 내세운 ‘신형 대국관계’와 맥을 같이한다. 시 주석 체제 출범 이후 동남아시아 각국과의 협력에 공을 들여온 것도 아시아 패권과 무관치 않다.
답답한 건 G2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한국이다. 미·중의 의도와 동북아 역학구도를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가 나아갈 외교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바로 균형잡힌 실리외교다. 대미·대중 관계에서 갈등현안을 분리 대응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금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우선 대미관계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아시아 중시정책의 핵심으로 꼽힌다.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고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미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조율이 필요하다”며 ‘한국 달래기’에 적극 나선 만큼 정치적 타협을 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미 동맹 강화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한·일 이제 진지하게 대화할 때
대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가 포함됐지만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과 같은 대응이어선 곤란하다.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최대의 무역시장이다. 게다가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 도움이 절실하다. 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하면서 한·중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에 할 말은 다 하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일 관계도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현재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대통령 취임 첫해 정상회담을 가져왔던 관례마저 깨졌다. 미국 일본 중국으로 이어져왔던 정상외교 순서에서 아예 일본을 빼 버린 것이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지만 대화 단절이 너무 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부가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과는 대화를 한다면서 일본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는 일부 서방의 시각을 흘려버려선 안된다. 국내 정치의 유불리를 떠나 마음의 문을 열고 만날 때가 됐다.
이재창 국제부장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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