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는 내내 그랬다. 어떻게 살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안 죽고 버틸 것이냐가 화두였다. 출판사 대표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도 이젠 낡은 수사”라며 “책을 찍어봐야 손해만 보니 ‘활자밥’ 먹는 일을 이젠 접어야겠다”고 했다. 5년 전 도서유통업에 뛰어든 한 물류회사 대표는 “서점에서 반품되는 책이 30%를 넘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책 만드는 출판사는 다 죽고 책 폐기하는 파지회사만 살아남게 생겼습니다. 정말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아요.”
독서의 계절인 가을 들어 판매량이 더 줄더니 이달엔 장부를 들춰볼 엄두도 못낼 정도라고 한다. 연말을 넘기지 못할 곳이 많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미 유명 출판사 한 곳이 무너졌다. 한때 100만부짜리 책을 여러 권 펴냈던 곳이 이 정도이니 다른 데는 말할 것도 없다.
불황에 반품되는 책 30% 넘어
서점도 마찬가지다. 1997년 5407개였던 전국 서점은 2003년 2247개로 급감했고 지난해 1700개로 줄었다. 엊그제 나온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주요 서점의 신간 판매 비중도 2007년 56.7%에서 지난해 38.7%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온라인서점으로 옮겨간 것도 아니다. 2011년까지 계속 성장하던 온라인서점 매출이 지난해 2.1% 줄어들면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년 말 대교리브로가 문을 닫았다.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도 올 1분기 2만5449원에서 2분기에는 1만6448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갈 데 없는 반품도서만 늘고, 출판사의 재고 부담도 그만큼 커졌다. 무엇보다 창고비용이 문제다. 책 한 권 보관비가 월 20원이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다양한 종을 발행하는 중견 출판사의 재고는 최소 50만권이다. 한 달에 1000만원, 1년이면 1억2000만원을 창고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대형 출판사는 연간 2억~3억원에 이른다. 마냥 책을 쌓아놓을 수 없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 헌 책이 돼 버리니 팔 수도 없다. 그런데도 출판사는 매일 아침 서점 주문에 따라 책을 보내야 하므로 재고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판매 부수를 예측하기 힘들 때는 부담이 가중된다.
연간 1억권 이상 폐지공장으로
그래서 파지회사만 바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재고도서를 종이값도 안 되는 금액에 사서 폐기한 뒤 재활용공장으로 보내는 게 이들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책값이 ‘가치’가 아니라 ‘무게’로 매겨진다. ㎏당 90~120원. 한 곳에서만 월평균 200t 이상의 책이 절단기에 잘려 나간다. 1t이면 2000여권이니까 매월 40만권이 사라진다. 이런 책이 전국적으로 연간 1억권 이상이다. 새 책값으로 따지면 1조원이 넘는다.
개중에는 선거철만 되면 ‘반짝’하다 없어지는 정치인들의 낯뜨거운 책도 많다. 선거에서 떨어질 경우 출판사가 제작비에 폐기처분 비용까지 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니 책 만드는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독서문화진흥기본계획’도 한가하게만 들린다. 게다가 독서출판기금 5000억원 조성과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 0.56%에 불과한 출판 예산 3% 증액 등을 요구하는 출판계의 목소리마저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그친다면, 장차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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