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이동통신인 LTE의 신규 주파수가 경매로 나왔을 때다.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게 누구를 위한 게임이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통신장비 업자, 그것도 외산 통신장비 업자만 좋게 생겼다는 수군거림이었다.
LG유플러스는 광대역 LTE 통신망 구축을 위해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 화웨이 등과 장비 공급계약을 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의 한국 시장 진입을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다.
오지랖 넓은 미국
그동안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 뭔가 일을 좀 해보려고 할 때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놨던 미국이다. 미국 정부나 정치권이 미국 시장 안에서 그러는 거야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과 중국의 문제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어도 유분수지, 한국이 아무리 미국의 동맹국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더구나 LG유플러스는 민간사업자다. 보안에 전혀 문제없다고 직접 해명까지 한 터다.
백보를 양보해 미국 말대로 보안 우려가 있다고 치자. 일본 소프트뱅크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때 미국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왜 한국만 문제삼는지 모르겠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데는 우리 정부 책임도 있다. 국정감사에서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 질의가 나왔다. 당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통신 보안과 국내 장비산업 타격을 우려했다. 아니 그게 문제면 외산 장비 전체가 다 해당되지 어떻게 화웨이만이겠나. 미국 시스코가 들어와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전 세계 네트워크 장비시장 비중으로 치면 고작 3%대에 불과한 한국이다. 그런데도 외산 장비 업자는 한국에 유독 관심이 많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쪽짜리 IT강국
지난 수년간 수조원을 투자해 이만한 무선 및 이동통신 환경을 갖춘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WiFi, DMB, 3G, LTE, LTE-A에다 NFC, RFID 등 온갖 무선통신은 다 가능하다. 지하철 안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동시에 여러 서비스를 이용하는 강남역 같은 곳은 아예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다. 통신장비 테스트베드로는 그야말로 최적지다. 화웨이라고 왜 이런 환경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싶지 않겠나. 저가 공세가 아니라 돈을 주고라도 들어올 판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딱 맞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지만 정작 우리는 이 좋은 환경에서 통신장비 산업을 키우지 못했다. 2011년 통신사 대상 장비매출 기준으로 보면 스웨덴 에릭슨(21.5%) 화웨이(16.5%) 프랑스 알카텔루슨트(13.5%) 미국 시스코(8.9%) 핀란드 NSN(8.8%) 순이다. 이들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2.3%)가 8위인 게 위안이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뭘 개발했느니, 상용화했느니 호들갑만 떨었지 아무 전략이 없었던 결과다.
하기야 공공기관마저 외산 장비로 쫙 깐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그런 정부가 이제 와서 통신장비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뒷북치기나 하고 있다. 미·중 통신보안 갈등에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나마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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