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28) 다수의 힘

입력 2013-12-06 17:26   수정 2013-12-06 18:12

▧ 들어가며…

지난 27회차 칼럼에서는 집단적 사고의 맹점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소수의 힘’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소수의 확신 있고 일관된 목소리가 다수를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다수의 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다수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특징을 가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수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기출된 문제는 다음과 같다.

2013 숙명여대 수시 기출 : 대중의 집단적 행위의 문제점
2013 중앙대 수시 기출 : 인간행동의 동인
2011 중앙대 수시 기출 : 집단의 특성
2010 연세대 수시 기출 : 한 사회에 새로움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수행하는 역할
2010 성균관대 수시 기출 : 집단 내에서 다수에 대한 개인의 동조현상

▧ 다수의 특성

다수의 특성을 보여주는 <성균관대 2010 기출 제시문>을 우선 살펴보자.

집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고유성이 동일한 전체 속으로 녹아든다. 일단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 상황에 접하게 되면 개인의 개별적 특성의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자체의 독특한 특성과 역동성이 나타난다. (중략) 이는 개인 정체성이 집단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며, 전체적 통일을 향한 개인의 변화가 ‘우리’ 형성의 충분조건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형성은 인지적 측면뿐 아니라 감정적, 행동적 요소까지 결합하여 강력한 집단적 힘을 발휘할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특히 정서적 요소의 결합은 전체적 조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타인과의 인지적 유사성을 지각하는 것은 ‘친밀감’ ‘따뜻함’ ‘안정감’ 등의 정서적 요인들을 자극하여 전체 ‘우리’로의 적응을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일어나도록 촉매 역할을 하며, 무리한 강요 없이도 집단을 위한 양보나 헌신을 가능하게 한다.

▧ 집단적 힘의 부정적 측면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일개 구성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집단 속에 녹아들어 상호작용을 거듭하고 그것이 사회적·문화적 진화를 촉진시키는 힘이 된다. 구성원 개개인의 합보다 집단 전체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 집단의 힘으로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스마트 스웜(The Smart Swarm)’이라고 지칭되는 개미나 꿀벌 등은 무수한 구성원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집단의 생존과 발전을 이루어낸다. 다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과정에서 감정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그 집단의 성원이라는 친밀감, 소속감, 안정감 같은 것들이 ‘집단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역동적 힘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런 감정적인 요소 때문에 집단의 역동성이 위험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다수가 가진 힘의 긍정적 측면을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부정적 모습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2013학년도 중앙대 수시에 기출된 기형도의 <홀린 사람> 전문이다. 군중은 대체 무엇에 홀린 것일까. 무엇이 다수로 하여금 흐느끼고, 실신하고, 분노해 날뛰도록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군중심리이다. 군중심리의 위험성은 역사적으로 확인된다.

<중앙대 2011 기출> 문제에서는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던 괴벨스가 대중을 광적 흥분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대형 깃발로 장식된 무대, 격렬한 연설, 선동가요, 극적 조명효과, 장엄한 불꽃놀이 등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정적 선동으로 나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전체주의가 확산되는 위험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군중은 다수로서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 쉽게 조작되고 선동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개인이 자유의지와 비판적 시각을 상실하고 집단의 일원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될 때, 진실을 왜곡하고 권력에 휘둘리는 우매한 무리로 전락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집단적 힘의 긍정적 측면

이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기로 하자. 위와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집단의 힘은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동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는 사회·문화적 진화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긍정적으로 발현되어 왔다. 동조현상은 집단주의 속에 개인을 매몰시키는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집단을 통해 발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선택인 것이다. 또한 비판 의식 없는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서 욕구와 필요를 조절하고 집단과 화합하려는 인간의 고차원적 능력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개인의 잠재력이 발휘되고 사회적 창조력이 발현된다. 종교와 예술, 역사와 문화가 이러한 집단의 힘 때문에 쇠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연세대 2010 기출> 주제가 ‘한 사회에 새로움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수행하는 역할’이었던 것도 이와 같은 집단의 긍정적 힘을 전제로 한 것이다. ‘진보는 일종의 집단적인 성찰이다. 거기에는 하나의 고유한 뇌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창안자들의 무수한 뇌 사이에서 모방 덕분에 생겨나는 연대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가브리엘 타르드,『모방의 법칙』중)

우리 역사에도 군중의 힘이 긍정적으로 발현된 사례가 있다. 다음 글은 <2013 숙명여대 기출> 제시문이다. 박태순의 『무너진 극장』 중 일부이다. 1960년 4·19 혁명을 가능하게 하고,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군중의 힘이 가진 역동성과 파괴력이었다. 그것은 폭력성을 가지기에 위험한 것이지만, 때로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성을 같이 한번 느껴보자.

나는 무의식중에 앞에 보이는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전신으로부터 알지 못할 힘이 솟구쳐 나와서 근육이 불뚝불뚝 일어서고 머리에 피가 몰려서 눈앞이 아뜩해 왔다. …(중략)… 저 위선과 기만의 음성들, 레코드판들처럼 똑같이 반복되었던 찬양의 소리, 속삼임 소리, 신음 소리, 불평과 불만의 소리는 일차 깨뜨려질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이나 내는 기괴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 닥친 무질서에 환장해 버려서, 마치 사회와 인습과 생활규범을 몽땅 망각한 것 같았다. 그들은 기괴한 소리를 뱉으며 물건들을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중략) 데모의 그 안쪽에는 이런 도취, 이런 공동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었다. 오류에 바진 질서를 파괴하여, 인간을 속박시키던 것들을 풀어 버리고, 구차한 사회생활의 규범과 말 못할 슬픔과 부정부패에 대한 울분을 훌훌 떨구어 버리고 나서, 하나의 당돌한 무질서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만간에 극장을 몽땅 태우고 말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어느덧 불길은 심상치 않은 세력으로 번져 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흥분은 더욱 가세되어 있었다. …(중략)… 바로 그날 4월26일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날이었으며 20세기로 들어온 이래 한국에 있어서 가장 긴 하루 중의 하나였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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