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 거래 없는 국내은행은 영향 적을 듯
[ 뉴욕=유창재 /박신영 기자 ] 자산 100억달러 이상의 미국 대형 은행들은 앞으로 자기자본을 활용한 트레이딩으로 돈을 버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소유하거나 이런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된다.
미국 중앙은행(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미국의 5대 금융 규제당국은 10일(현지시간) 잇따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이른바 ‘볼커룰’ 최종안을 승인했다. 이 법안은 내년 4월 발효되지만 2015년 7월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볼커룰은 2010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안’의 핵심 조항이다. 이른바 ‘프롭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으로 불리는 자기자본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자기자본거래는 고객이 맡긴 돈이 아닌 자기자본이나 빌린 돈으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매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IB)들은 자기자본거래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은행들의 고위험·고수익 거래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강력한 규제를 추진해왔다.
최종안은 은행들이 고객의 사자 주문과 팔자 주문 사이에서 가격을 조정하며 시장을 형성하는 이른바 ‘시장조성(마켓메이킹)’을 위한 트레이딩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하지만 고객의 수요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트레이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은행들이 스스로 입증하도록 강제했다. 이 밖에 주식·채권 발행의 인수주선업무(언더라이팅), 리스크 헤지 등을 위한 거래도 예외로 인정했다. 당초 자기자본거래 금지 대상에 포함됐던 해외 국채도 각국의 반발로 최종안에서 빠졌다.
볼커룰은 월스트리트의 수익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트레이딩 매출이 감소하는 데다 규제 준수를 위한 법적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8대 대형은행의 세전이익이 1년에 100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간 반발해온 월스트리트는 일단 말을 아꼈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볼커룰 시행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내 현지법인과 지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볼커룰의 적용 대상인 자기자본거래를 거의 하고 있지 않아서다. 다만 볼커룰을 따르기 위한 컴플라이언스(준법)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은 상당 부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 금융당국이 추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 금융사들의 현지법인에 자기자본 규제나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행정적인 부담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박신영 기자 yoocool@hankyung.com
■ 볼커룰
Volcker rule. 미국의 새 금융규제법안인 도드-프랭크법안의 하위 조항이다.
규제를 고안한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이름을 땄다. 연방정부의 예금보증을 받는 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투자를 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들의 자기자본거래를 금지한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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