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압력 본격화 시사
[ 워싱턴=장진모 기자 ]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사진)는 “현재 12개국이 진행 중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최종단계에 와 있어 한국을 협상에 참여시키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커틀러 대표보는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한국의 TPP 참여’ 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은 새 참가국의 합류를 결정하려면 사전 협상을 마치고 의회에 통보 후 90일이 지나야 승인받을 수 있다면서 “현재 시간표로 볼 때 협상에 참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국이 TPP의 창립 멤버로 들어오기 어렵고 12개국 간 협상타결 후 추가 협상을 통해 ‘2차로’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말 TPP 관심 표명 이후 미 정부 고위당국자가 한국을 제외하고 기존 12개국끼리 협상을 타결하겠다고 밝힌 건 처음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 시장에 보다 중요한 것은 규범(룰) 협상보다 시장개방(상품의 관세 하락·서비스시장 개방 등) 협상이기 때문에 TPP 참가국과 양자 간 시장개방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협정문을 작성하는 룰 협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관세장벽 등을 다루고 있는 룰 협상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사라져 한국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커틀러 대표보는 “한국은 TPP 가입에 앞서 한·미 FTA 이행과 관련한 우려 사항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 미 정부 차원의 통상압력이 본격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로 △원산지 검증 완화 △금융회사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 공유 △자동차분야의 비관세 장벽 완화 △유기농 제품의 인증시스템 등 네 가지를 지목했다. 자동차 분야와 관련해 “미 자동차업계는 한국이 조만간 시행할 ‘보너스-맬러스’(환경오염이 큰 차에 과태료를 부과해 얻은 수익을 작은 차에 보조금으로 주는 것) 제도를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 한국 측을 대표해 참석한 안호영 주미대사는 “TPP와 관련해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래된 후보도 아닌 ‘하이브리드형’ 후보”라며 “한국은 자유무역에 대한 강력한 신봉자여서 TPP 협상에 매우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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