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부·공기업 3각 이권틀 깨고
시장경쟁에 노출시켜야 개혁 가능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미제스(Mises)의 통찰력은 예리했다. 그는 일찍이 사회주의 ‘경제계산논쟁’을 통해 소련의 붕괴를 예언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금지하는 체제다. 따라서 사회주의 체제에선 생산수단의 거래가 이뤄질 수 없고 화폐 가격이 매겨질 수 없어 그 희소성 정도를 알 수 없다. 그 결과 여러 생산방법 중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저렴한지 판별할 수 없다.
자본재 시장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사회주의가 그나마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재 각각의 ‘시장가격’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자본재 가격체계를 모방함으로써 가격정보 부족을 메울 수 있었다. ‘지하경제’도 한몫했다. 계획경제에서 일종의 불법기업인 ‘톨카치’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생산자원을 비축하고 비싼 가격에 이를 필요로 하는 공식 부문과 ‘암거래’했다. 권력층과 먹이사슬을 형성해 부패를 수반했지만, 일정 부분 자원배분 역할을 수행하는 ‘유사 시장’으로 기능했다.
이 같은 ‘유사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었다. 비효율이 누적된 소련은 서서히 붕괴했다. 경쟁을 통한 시장규율이 작동하지 않는 체제는 비효율적이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미제스의 통찰이 옳았던 것이다.
최근 재정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제고되면서 그동안 가려져온 공공 부문 부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2012년 말 현재 공공 부문 부채는 일반 정부 국가부채의 118%에 이르고 있다. 공공 부문 부채의 대부분은 공기업 부채다. 그동안 한국 공기업은 경쟁압력에 노출되지 않은, 즉 ‘시장테스트’의 안전지대에 위치했다. 공공성을 내세워 경쟁을 막고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가격을 통제했다. 손실이 발생하면 예산으로 메워주고 자본조달이 필요하면 국가가 지급보증을 섰다. 공기업에 시장의 햇빛이 비칠 틈이 없었다. 미제스가 말한 ‘합리적 경제계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였다. 지금 목도되고 있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부채 폭증, 그리고 부패 고리’는 구조적 원인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밝혔다. 혁신을 드라이브하고 부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방향은 맞지만 공기업 개혁은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개혁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격을 통제하다 보니 시장가격이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시장가격이 정확히 도출돼야 원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원가를 모르는 상황에서 혁신을 측정할 수 없다. 또한 손해를 예산으로 메워주는 연성제약으로 혁신의 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기업은 ‘설립목적’에의 충실도로 평가되기 때문에 굳이 경영효율화를 꾀할 필요가 없다. 부채감축을 말하지만 솔직히 얼마를 줄이는 것이 적정한지도 미지수다. 적정부채는 자본구조와 자본조달 비용, 그리고 수익창출 능력을 알아야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공기업’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정부는 공기업에 정부사업을 대행시킴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사실상 분식해 왔다. 공기업은 정부사업을 대행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지만, 그 틈을 이용해 ‘방만 경영’을 합리화했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는 정치권의 숨통이었으며, 공기업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시키는 지렛대로 역이용했다. 공기업 노조는 스스로를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보루로 자임했다. 귀족노조의 음습한 사적 이익추구 행위는 이렇게 은폐됐다.
그동안 이권을 주고받아 온 ‘유사 시장’에서의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공기업’의 ‘3각 구도’를 깨지 않고서는 공기업을 결코 개혁할 수 없다. 공기업을 경쟁압력에 노출시키지 않고서는, 무소불위의 공기업 노조를 법치로 순치시키지 않고서는 공기업 개혁은 공염불이다. 공기업 개혁은 그동안 ‘시시포스의 바위’였다. 하지만 시장 외연을 넓혀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단계적 민영화 등을 포함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시장을 거스르는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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