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정보 전달해주면 자신에게 불이익 올까 두려워…불상사 예상해도 입 닫아
2005년 미국의 한 병원 중환자실. 중병에 걸린 환자는 외부와의 격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위급을 알리는 신호음이 병원을 울리고 나서 한 무리의 의사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누구 하나 가운이나 마스크, 장갑 등 의료장비를 갖추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들은 누구 하나 이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데, 왜 아무도 말리지 않은 것일까.
한 간호사가 이유를 설명했다. 무리를 이끌고 있던 의사는 유명한 심장외과 의사로 간호사들을 무시하고 큰 소리를 지르기에 말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2005년 미국 간호사협회에서 발표한 ‘침묵이 목숨을 빼앗는다(Silence Kills)’는 보고서에 실린 사례다.
환자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왜 침묵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침묵 효과’도 한몫 차지한다. ‘침묵 효과(Mum effect)’란 조직의 위계체계에서 아래로부터 위로 정보가 전달될 때 좋은 내용만 알려지고, 나쁜 내용은 걸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침묵 효과’의 대표 사례는 1996년 미국에서 발생한 챌린저호(號) 폭발사건이다. 당시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교수는 폭발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실무 연구원들과 관리자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아냈다. 연구원들은 0.33~0.5%라고 답했는데, 중간관리자들은 0.001%라고 답해 300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결국 파인만 교수는 낙관적 태도로 일관하던 중간관리자들이 상부에 연구원들의 부정적인 의견을 보고하지 않은 침묵이 원인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할 만한 좋지 않은 소식이 있음에도 부하직원이 상사 앞에서 침묵만 지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크리스 아지리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에 따르면 부정적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은 다소 편견을 가진 사람 또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상사가 자기를 나쁘게 볼까 두려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슨 교수는 1986년 옛 소련에서 벌어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당시 체르노빌에서는 비상사태에 대비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 준비를 맡았던 조원들이 퇴근하고, 다른 조가 실험을 실시하게 됐다. 그 인수인계 과정이 대참사의 씨앗이 됐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책임을 질까 싶어서 누구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실험의 작은 문제를 후속 근무조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대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09년 대규모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는 내부 조직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항공업계에서도 조직 위계체계 때문에 부기장이나 승무원들이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기장의 말만 따르다가 항공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침묵 효과’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먼저 리더가 ‘권력’과 ‘권위’를 구분해야 한다. 리더가 일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부하직원들이 리더의 말을 믿고 따르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즉 권위가 서야 한다. 문제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부하직원에게 인사, 보상 등으로 불이익을 주면 다른 직원들도 말을 아끼는 ‘조직 침묵’이 생길 수 있다.
다음으로 비판적 직언을 독려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지적은 뭔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보여 회피하고 싶은 인간 본성 때문이다. 이런 직언을 피하면 오히려 조직이 실패할 수 있다.
리더는 반대 의견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이 서슴없이 개진되는 분위기를 장려하고, 합리적인 직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최고경영자(CEO)는 “비판으로부터 지혜를 배운다”며 “부하의 직언이야말로 확실한 경영 자문”이라고 말했다.
회의에서 즐거운 소식만 나온다면 오히려 조심하라.
나만 빼고 모두 알고 있는 나쁜 소식이 ‘조직 침묵’으로 감춰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계평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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