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왜곡과 저성장 위기 넘으려면
입법권의 오남용 견제장치 둬야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우리는 토크쇼, 신문, 잡지의 사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권을 향해 성장과 고용에 적합한 정책, 경제를 해치는 정책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 입이 닳도록 설명해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치권에서는 그런 설명을 번번이 외면하고 들어주지 않았다. 나쁘니까 버리라고 요구한 정책을 되레 입법화하기 일쑤인 상황이다. 정치권은 지지표를 위한 선심성 매표 행위, 당리당략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차별·특혜 입법 등 법 같지도 않은 법을 마구 찍어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국고(國庫)를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구유통 정치(pork barrel)’도 꼴불견이다.
주민들이 다수결 원칙에 입각해 스스로를 다스릴 통치자를 뽑는 ‘민주주의’가 그런 추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하는 장점’이 있다는 칼 포퍼의 말이나, 민주주의를 ‘수(數)의 정치’로 정당화하는 법 철학자 한스 켈센의 실증주의 논리에 만족해야만 할까.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민주정치가 남긴 잘못이 너무 크다. 첩첩이 쌓인 규제, 방만한 재정운용과 통화확대 등을 불러들여 시장 경제를 왜곡하고, 고실업 저성장의 경제위기 등 오늘날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병폐를 야기한 게 바로 이 민주주의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실패’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주목할 것은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이다. 정치가들이 부도덕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간은 제도의 틀 내에서 행동하기 마련이기에 정치적 결정 과정을 안내하고 조종하는 정치 제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치 제도가 잘못됐으면 아무리 훌륭한 경제 정책이라도 정치가들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나쁜 정책을 채택해 경제를 해친다.
의회 제도를 보면 민주주의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입법 자율, 의회 구성, 선거·표결과 관련된 ‘권력구조’는 헌법적으로 깔끔하게 구비돼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권의 남·오용을 견제하도록 ‘권력을 제한하는 것’인데 애석하게도 의회의 권력 제한을 위한 정치제도가 매우 미흡한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그런 결함의 중심에는 프랑스 철학자 루소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 전통은 ‘왕(王)의 정치’를 ‘민(民)의 정치’로 바꾸기만 하면 자유와 번영이 저절로 보장된다는 순박한 믿음에서 입법권에 대한 모든 견제장치를 제거해 버리는 우(愚)를 범했다.
그런 잘못된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통치자, 국회를 바꾼다고 해서 정치 실패가 치유되는 게 결코 아니다. 부채, 규제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정치제도에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그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자정능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강조할 것은 정치권에 적합한 경제 정책을 제안하기보다 민주정치 실패를 치유하고 개선할 정치제도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 전통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지적하듯, 필요한 건 입법·조세·예산 등의 권력을 제한하는 정치제도 도입이지 분권형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구조의 재편이 아니다.
시장 진입의 인허가, 재정·금융 특혜, 차별입법 등을 막아낼 유서 깊은 법치의 도입은 물론이요 예산관련 정책 결정과정을 견제할 적자예산 제한 규칙 등이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정치제도다.
그런 의회의 ‘권력제한’을 목표로 하는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민주정치를 개선할 경우에만 ‘수의 정치’를 극복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넘어서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는 건전한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런 정치적 장에서만이 시장경제를 해치는 정책을 도태시키고, 좋은 정책의 정치적 선택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유와 번영은 민주주의 개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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