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리석은 후손들

입력 2013-12-29 21:10   수정 2013-12-30 04:44

우리 이기심 탓 훼손되는 반구대 암각화
이 '한류 첫페이지'를 살릴 지혜 모아야

정몽준 <국회의원·새누리당 mjchung@na.go.kr>



다시 추운 계절이다. 겨울이 되면 2010년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당시 울산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 훼손 실태를 파악하러 갔다가 암각화 앞의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졌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가 다 아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사시대 유적이다. 각종 육지 동물과 다양한 고래들 그리고 이를 수렵하는 선조들의 모습이 바위 위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한류의 첫 페이지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재가 지금 허물어져가고 있다.

울주군의 대곡천 옆에 붙어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된 뒤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발견 6년 전 하류에 댐이 건설되어서 1년의 반 이상을 물속에서 지낸다. 이렇게 거의 50년간 ‘물고문’을 당하다보니 풍화가 빨리 진행되어서 1~2㎜ 깊이로 얕게 새겨진 암각화가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암각화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물고문’을 멈춰야 하는데 그 방법을 놓고 수십 년간 논쟁을 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일단 댐의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울산시는 식수를 위한 대체 수원을 찾기 전에는 수위를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울산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수원지 제공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시민들에게 낙동강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면서 댐의 수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가 물 수요량을 과다 추정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고, 무엇보다 울산시민의 대다수가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도정수만 된다면 대체수원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댐의 수위를 낮추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암각화는 ‘물고문’ 외에도 다른 종류의 수난을 당했다. 그것도 암각화의 가치를 안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고고학도라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탁본을 떠가느라 암각화를 훼손했고, 심지어 바위의 상태를 알아본다면서 망치 같은 장비로 암각화에 충격을 가하기도 했다. 울산시는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겠다면서 암각화 코앞에 큰 도로를 내고 박물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암각화 훼손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눈앞의 편리 때문에 소중한 가치를 저버리는 우리의 수치스러운 이기심이다. 조상들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물려주었는데 어리석은 후손들은 그것을 보존하지도 못하고 있다. 새해에는 암각화를 살리는 근본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몽준 <국회의원·새누리당 mjchung@n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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