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한 명의 학자가 100개의 정의도 내릴 수 있는 게 ‘창조’라고 한다. ‘창조’에 대한 합의된 정의도 없고, 측정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창조’가 갖는 의미는 긍정적인 것 일색이다.
정치인이나 관료에게는 이런 마법 같은 용어도 없다. 왜냐고? 일단 아무데나 ‘창조’만 갖다 붙이면 무슨 일이든 다 벌일 수 있다. 실패해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창조’가 어디 쉽게 되느냐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그 사이 어디서 무슨 성과라도 떨어지면 대박이다. 무조건 ‘창조’로 생긴 결과라고 우긴들 그 인과관계를 검증할 사람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선 1주년 간담회 때 “창조경제의 씨를 뿌린 지 얼마나 됐나. 시간이 지나면 창조경제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창조’의 마법을 다 간파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옳다. 창조경제 자체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정부가 창조의 씨를 뿌리겠다면 제대로 뿌리라는 지적을 하고 싶은 거다.
'창조'면 뭘 해도 되나
창조경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신년사를 통해 2014년 정책 방향을 내놨다. 첫째가 온라인 창조경제타운 확대이고, 둘째가 민간 주도 창조경제 추진이다. 그 다음은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벌써 여기서 꽉 막히는 느낌이다. 민간 주도 창조경제를 말하면서 굳이 관(官) 주도 창조경제타운에 목숨 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혹여 대통령이 구상한 프로젝트라서 그런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미래부가 창조경제타운의 벤치마킹 사례로 든 게 있다. 쿼키(Quirky), 테크숍(Techshop), 이노센티브(InnoCentive), 캐글(Kaggle), Y콤비네이터(Y Combinator) 등이다. 저마다 특성 있는 해외 창업 플랫폼이다. 모두 민간이 하는 거다. 미래부는 이들 플랫폼 서비스를 모아 창조경제타운을 건설하고 있다. 베끼는 거야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밖에서는 민간이 하는 일을 왜 우리는 하필 정부가 해야 하느냐다.
플랫폼도 시장이다
민간이 관료들도 다 아는 해외 창업 플랫폼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실제로 국내에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과연 이들 기업이 관이 주도하는 창조경제타운을 환영했겠나. 그것도 정부가 하는 일은 다 공짜로 아는 우리 풍토에서 말이다. 설령 국내에 이런 서비스가 없다고 해도 정부가 꼭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시장화 테스트’는 어디 폼으로 있나. 창조경제타운을 정부와 민간 중 누가 더 잘할지 경쟁 입찰에라도 부쳐봤어야 옳았다.
지금 창조경제타운의 풍경이라는 건 뻔하다. 허구한 날 아이디어 제안이 몇 건 들어왔는지에 대한 자랑뿐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늘 이런 식이다. 전시 행정에 불만을 토하는 이용자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대학 교수 등도 창조경제타운이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부처나 관료들 성과까지 챙겨야 하느냐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업화든 창업이든 그 플랫폼 자체도 시장이요, 일자리다. 더구나 모든 플랫폼이 글로벌 경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정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지금이라도 궤도를 수정하는 게 맞지 않겠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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