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열풍이 한창이던 2005년, 두부시장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풀무원이 장악하고 있던 포장두부 시장에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상대는 바로 식품대기업 ‘CJ 제일제당’이었다. 프리미엄 이미지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풀무원은 다양한 경쟁자들의 도전을 받아 왔지만 두부시장에서 적수가 될 만한 기업은 없었다. 하지만 CJ의 출현은 달랐다. 실제로 CJ가 두부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 자체만으로 풀무원의 주식은 3개월 만에 약 40% 가까이 하락했다. 10명의 직원으로 시작해 시장을 장악한 풀무원의 신화가 도전받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CJ는 3년간의 연구를 통해 소포제를 넣지 않은 건강한 두부라는 점이 강조된 ‘행복한 콩’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했다. 소포제는 두부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물질인데,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인공 첨가제이기 때문에 CJ의 홍보 전략은 소포제를 사용하는 풀무원 두부가 소비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유해한 식품처럼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전략은 매우 큰 효과를 보였다. CJ가 두부시장에 진출한 직후인 2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에 비해 무려 80%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CJ가 풀무원의 장기 독주를 멈추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브랜드중심의 경쟁력 강화를 전략으로 내세운 풀무원의 반격이 시작됐다. 풀무원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소포제를 넣지 않은 ‘고농도-콩가득두부’ 브랜드를 출시했다. 동시에 첨가제가 포함된 두부의 선택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진한 맛과 약한 맛에 대한 선호의 문제라는 점을 홍보해 CJ의 차별화 전략을 희석시켰다. 그리고 이에 더해 CJ의 기술이 일본 기술인 반면 풀무원은 독자 개발해 세계 최초로 특허 출원한 한국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해 풀무원 두부에 대한 선호를 높였다. 이로 인해 매출과 순이익뿐만 아니라 주가도 다시 상승하고 시장점유율도 회복할 수 있었다.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한 반격이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경영전략의 중심에는 ‘브랜드 매니저(brand manager)’가 있었다.
브랜드 이미지의 총괄 책임자
브랜드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전통적인 마케팅이 아닌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업을 브랜드 매니저라고 한다. 기존의 마케팅이 제품의 유통과 판매와 같은 영업활동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활동이라면, 브랜드 마케팅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계획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진 활동이다. 즉, 직업으로서의 브랜드 매니저는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아니라 소비자가 기업이 제공하는 재화·서비스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 매니저는 대부분 ‘브랜드 이미지 매니저’ ‘브랜드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브랜드의 목표 이미지를 설정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한 뒤 목표한 이미지를 형성해 그 가치를 올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더해 기업에서의 브랜드 매니저는 해당 브랜드의 매출, 손익까지도 책임지게 되고 수반되는 모든 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재화와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총괄적인 책임자인 것이다.
브랜드 매니저는 재화나 서비스의 속성이 아니라 이미지를 사용해 해당 브랜드를 소비자의 마음에 새기기 때문에 성공한 브랜드 마케팅은 해당 제품이 동일한 제품들 사이에서 대표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활동을 ‘구글’이라고 표현하거나 일회용 반창고를 ‘대일밴드’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소비자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브랜드가 해당 제품군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돼 브랜드 자체가 일반명사처럼 활용되는 것이다.
'대표성 휴리스틱' 활용전략
이처럼 브랜드 매니저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소비자들로 하여금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속하는 특성이 그 대상 전체의 특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효과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경제학적으로는 ‘대표성 휴리스틱’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소비자의 판단 오류를 유발한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개념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선호와 선택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경제학이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일관된 선호를 가지고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한 반면에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때때로 합리적이고 매우 감정적이며, 상황에 따라 다른 선호를 가지고 효용의 극대화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수준을 만족시키는 대안을 선택하는 존재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보다 현실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연구하는 분야인 것이다. 이러한 행동경제학에서의 주요개념인 휴리스틱은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직감이나 직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bias)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은 이러한 특징을 가진 휴리스틱의 한 종류다. 대표성 휴리스틱은 어떤 사건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고 이를 통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라는 속담이 대표성 휴리스틱을 표현하는 좋은 예다. 한두 가지 속성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속담인 것이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 3000개 넘어
풀무원과 CJ의 두부전쟁도 대표성 휴리스틱으로 인한 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특정 브랜드가 상품이나 서비스 전체를 대표한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전형성’이다. 전형성이란 같은 부류의 것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의미하는데, 어느 한 브랜드의 전형성이 높을수록 소비자들의 머릿속에서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가동돼 해당 브랜드가 제품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적으로는 시장에서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전형성이 높다. 풀무원의 브랜드도 이와 같은 경우다. CJ 진출 이전에는 소비자들에게는 ‘두부’를 떠올리면 곧바로 ‘풀무원’이라는 브랜드가 생각날 만큼 다른 어느 두부 브랜드보다도 소비자들에게 친숙했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으로 전형성이 낮아지자 풀무원의 브랜드 매니저들은 또 다른 대표성 휴리스틱 전략으로 경쟁자를 막아냈다. CJ의 신규 브랜드가 높은 전형성을 갖지 못하도록 새로운 풀무원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 매니저들의 활동은 때로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그들의 역할이 단지 상품의 홍보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브랜드 매니저는 세계에서 유망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취업포털사이트인 ‘샐러리닷컴’이 선정한 유망직종 2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3000개가 넘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가 활동 중에 있다. 한편 브랜드 매니저들의 활동은 행동경제학의 발달과 맞물려 그 영역이 넓어지고 전략이 보다 입체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동경제학의 발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직업인 브랜드 매니저의 역할이 기업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리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동영 < KDI 연구원 kimdy@kdi.re.kr</a> >
용어 풀이
▨ 브랜드매니저 (Brand Manager)
브랜드의 기획, 이벤트, 홍보, 광고, 마케팅 등 브랜드와 관련된 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대표성 휴리스틱 (representativeness heuristic)
어떤 사건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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