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 대는 소비자평가] 中企 밀어주려던 소비자평가…"기준이 뭐냐" 대·중기 모두 불만

입력 2014-01-05 21:03   수정 2014-01-08 15:23

기업들 평가 수긍 못하는 이유

(1) 물가안정·경제민주화 등 정부뜻 반영
(2) 조사기관마다 평가 결과 달라
(3) 기능 다른 제품도 같은 방식 평가
(4) 불이익 우려…이의제기 못하고 '끙끙'



[ 김희경 / 김병근 기자 ]
최근 소비자단체가 실시하는 품질평가를 받은 한 업체 관계자는 “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소비자평가 사업의 취지가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하겠다’는 것인 만큼 정부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며 “평가 결과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평가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해당 업체들이 반발하는 데에는 ‘평가의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산을 지원해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제한된 예산으로 조사하다 보니 평가가 부실하고, 조사 경험과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중진공, 소비자평가 주도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은 2012년 4월 소비자시민모임과 ‘스마트제품 발굴지원 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여러 제품을 비교 평가해 우수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밖에 다른 단체와도 소비자평가 사업을 진행하며 2012년엔 6850만원, 2013년엔 2억717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중진공이 나서기 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평가 사업을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 때 ‘물가기관’임을 자처한 공정위는 “한국에도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와 같은 권위 있는 소비자평가 잡지가 있어야 한다”며 소비자단체에 돈을 줬다. 공정위는 2012년에도 7억9000만원을 편성했고 작년에는 12억원을 들여 14개 품목에 대한 소비자평가를 지원했다.

외국에서는 제품의 품질 위주로 평가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판매가격’을 따지는 사례가 많다. 물가를 안정시키거나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개입되다 보니 가격을 그만큼 중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거의 팔리지 않는 값싼 중소기업 제품을 평가대상에 억지로 끼워넣거나, 값비싼 외국 유명제품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와 중진공은 “정책 의지를 무조건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최무진 공정위 소비자정책과장은 “소비자단체로부터 제안서를 공개 접수한 뒤 1년 혹은 반기 단위로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며 “지난해 14건의 가격·품질 비교정보를 제공했는데 예산을 일부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

공정위나 중진공으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은 소비자단체는 품질인증기관 등에 조사를 의뢰해 소비자평가 결과를 내놓는다. 누가 조사를 하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지난달 19일 녹색소비자연대가 내놓은 폴리염화비닐(PVC) 바닥재 평가가 대표적인 사례다. 녹색소비자연대는 27종 제품 가운데 KCC한화L&C 등의 8개 제품에 대해 ‘표면코팅 두께 등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표면코팅 두께가 얇으면 바닥재 온도가 높아질 때 유해물질이 표면 위로 분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평가는 FITI시험연구원이 진행했다.

KCC 관계자는 “국가가 지정한 인증기관은 4곳인데 테스트 방식에 따라 기관마다 오차가 있다”며 “FITI시험연구원이 아닌 다른 인증기관에서 KC마크 인증을 받았는데 이번 평가에서 ‘기준 미달’로 나와 억울하다”고 말했다.

로봇청소기는 평가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소비자시민모임은 로봇청소기 7개 제품 가운데 4개(마미로봇, 유진로봇 등) 제품의 먼지 제거 기능이 떨어진다고 지난달 4일 발표했다. 10분간 얼마나 많은 양의 먼지를 모으는지 측정했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들은 “로봇청소기는 평균 1시간30분~2시간 정도 청소를 하는데 작업이 다 끝난 뒤 얼마나 깨끗해졌는지를 측정하지 않고 10분 만에 빨아들인 먼지 양을 따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박했다.

마미로봇 관계자는 “방향을 여러 번 바꿔 청소하는 시스템을 적용한 제품은 격자 모드로 움직이는 제품에 비해 짧은 시간에 많은 먼지를 흡입하기가 어렵다”며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 구석구석 청소할 수 있다는 장점은 고려하지 않고 10분간 먼지를 흡입하는 양으로 평가하는 것은 국제표준과도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다른 제품군 포함시키기도

한국소비자연맹이 작년 11월 내놓은 ‘공기청정기’ 품질 평가에는 독일 벤타의 에어워셔를 포함시켰다. 수입제품인 벤타 제품의 공기청정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반면 웅진케어스, 위닉스 등은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에어워셔, 공기청정기, 자연가습청정기가 엄연히 기능이 다른 제품이라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평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연맹은 “이들 모두가 비교 제품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벤타 제품은 소비자들이 공기청정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포함시켰다”고 해명했다.

소비자평가 결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소비자단체나 정부기관에 이의를 직접 제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잘못 보였다가는 나중에 품질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고 있지만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없다”며 “관련 협회를 통해 우회적으로 얘기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창섭 중진공 홍보실장은 “평가 발표 전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결과에 대해 충분히 논의한다”며 “사전에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희경/김병근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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