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가가 상승하던 시기에 증권사들의 일관된 '매수' 의견은 용인됐다. 시차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주가가 오른 덕이다. 최근 증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주가가 횡보하거나 하락하는 장에서도 증권사들이 '매수'만을 외치고 있다는 게 문제다.
10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들은 2만5707건의 기업 보고서를 내놨다. '강력 매수' 및 '매수' 보고서가 2만269건으로 78%에 달했다. 투자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3351건을 제외하면 90%로 높아진다. '매도' 보고서는 단 2건이었다. '중립' 2076건, '비중축소' 9건이었다.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보고서가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기업과의 관계를 꼽는다. K씨는 "매도 보고서를 냈다간 그 기업으로부터 출입이 정지되고, 기업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된다" 며 "애널리스트 활동을 사실상 접어야 하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기업들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증권사에서 산 금융상품에서 돈을 빼고, 회사채 발행에서 배제하는 등 실력 행사를 감행한다. 증권사 하부조직인 리서치센터가 외풍에 흔들리는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 눈치를 보고 적당히 보고서를 쏟아낸 결과 애널리스트들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져 더 궁지에 몰린다. 투자자들에게 악재를 숨기려고만 하는 상장사들에 1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주가 하락이 예상돼도 침묵하거나 호도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갹해야 할 때" 라며 "매도 등 결단력 있는 의견 제시가 애널리스트의 신뢰 회복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분석을 '업(業)'으로 하는 애널리스트(Analyst)의 본연의 직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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