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물러나는 '헬리콥터 벤'…위기탈출 영웅으로 기억될까?

입력 2014-01-10 16:48  

< 헬리콥터 벤 : 벤 버냉키 美중앙은행 의장 >


[ 박병종 기자 ]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Fed 이사로 있을 때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져들면 Fed가 돈을 찍어내서라도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버냉키가 Fed 의장이 된 후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를 통해 미국 경제를 벼랑에서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3조달러가 넘는 돈을 뿌려댔지만 경제는 기대했던 것만큼 살아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반론도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버냉키가 슬슬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6일 차기 Fed 의장 지명자인 재닛 옐런의 의회 인준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버냉키 의장의 임기는 1월 말로 끝이 나고 2월부터는 옐런이 세계의 경제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미국 종합 시사지 애틀랜틱은 “버냉키가 세계 경제 역사의 ‘영웅’으로 남을지, 아니면 ‘악당’으로 기억될지는 퇴임 후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양적완화로 경제 회복 돌파구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버냉키 덕분에 금융위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8년을 돌아보며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Fed는 미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미국을 구한 건 버냉키였다”고 썼다. 마크 거틀러 뉴욕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달 17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버냉키는 Fed를 통해 그의 지식과 열정을 금융시장 붕괴를 막는 데 썼다”며 “2차 대공황에서 세계 경제를 구했다”고 말했다. 타임은 버냉키가 100년 역사의 Fed에 가장 많은 혁신을 불러왔다고 평가하며 “투명한 소통, 선제 안내(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을 미리 알려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 양적완화가 혁신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8일 “그는 이전과 완전히 바뀐 Fed를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며 “21세기에 경제 정책을 구상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비판도 많다. 포브스는 지난해 11월 “버냉키의 Fed는 검증되지 않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기업들의 부실 채권을 사들이는 쓰레기 수거장 역할을 했다”며 “버냉키는 Fed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버냉키가 2008년 금융위기를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다. 버냉키는 2007년 12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자금 경색에 빠진 대형 은행들을 돕기 위해 기간입찰대출(TAF) 시스템을 만들어 은행들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줬다.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TAF를 중단할 계획이었지만, 대출 규모는 점점 커져 2008년에는 1조달러에 이르렀다. 이것이 결국 미국 금융시장의 부실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출구 연 버냉키

Fed는 지난달 18일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시행했다.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끝내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달에 850억달러어치씩 매입하던 채권 규모를 750억달러로 축소하고 향후 100억달러 안팎씩 줄여 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금융시장의 과도한 동요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추가 부양책을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적완화 축소와 경기부양이라는 2가지 카드를 경제 상황을 봐가며 유연하게 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안 최고경영자(CEO)는 WSJ에 “현재 시점에서 버냉키 유산의 반은 구체화됐다”며 “나머지 반은 더 이상 그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했다. 차기 의장인 옐런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단순명쾌했던 천재 학자

버냉키는 퇴임 후 당분간 워싱턴DC에 계속 머물 예정이라고 FOMC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난해 11월 한 연설장에서는 퇴임 후 경제 이슈에 대해 기고문을 쓰고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에서 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버냉키는 학자 출신이다. 1930년 미국 대공황을 연구했으며 1975년 하버드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며 졸업했다. MIT에서 ‘미국의 대공황과 Fed의 역할’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등 명문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상아탑에 있던 버냉키는 2002년 8월 부시 대통령에 의해 통화정책 부문 Fed 이사로 임명되면서 숨겨져 있던 정책 판단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양적완화 관련 발언 등 Fed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스타로 떠올랐다. ‘대통령의 경제 교사’라는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에 임명돼 부시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다. 빼어난 학식에다 정책 판단 능력이 부각되면서 그는 일찌감치 차기 Fed 의장 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공화당원이지만 정치적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아 민주당에서도 호감을 얻었다. 2006년 버냉키는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14대 Fed 의장에 취임했다.

상원 인준 통과한 옐런…양적완화 축소 속도는?

미국 상원이 지난 6일 재닛 옐런 차기 중앙은행(Fed) 의장 내정자(67)의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옐런은 내달 1일부터 벤 버냉키 의장의 뒤를 이어 4년간 Fed를 이끌게 된다. 옐런은 Fed 100년 역사에서 첫 여성 수장이며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전 의장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원 의장이다. 동시에 부의장에서 의장으로 승진하는 첫 사례다. 이런 ‘기록’에도 불구하고 옐런의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옐런은 인준 투표에서 찬성 56표, 반대 26표를 얻었다. 총 100명의 상원 가운데 18명이 폭설 등으로 투표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를 감안해도 득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등 전 의장들은 9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버냉키는 2006년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그러나 2009년 재임 때는 찬성 70표, 반대 30표였다. 당시 역대 최저 득표였지만 옐런이 그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찬성표가 적은 이유는 옐런의 정책 성향 때문이다. 옐런이 양적완화를 주도해온 만큼 향후 단계적 양적완화 축소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주류는 양적완화에 반대하며 조기 종료를 요구하고 있다.

월가 전문가들은 옐런이 직면한 도전과제로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양적완화를 축소하며, 매파와 비둘기파 둘로 나뉜 Fed를 통합하는 한편 시장 및 정치권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Fed는 월 850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를 올해부터 월 750억달러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박병종 한국경제신문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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