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타운'도 어떻게 할지 갈피 못잡아
세법개정안 하루만에 번복 후유증 겪어
[ 주용석/김주완/김우섭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구상을 밝힌 지난 6일. 국무조정실과 환경부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난데없이 ‘친환경 에너지타운 조성’이란 말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안에 3, 4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해 전국으로 확산시킨다는 추진 계획까지 제시했다.
곧바로 청와대에서 ‘대책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정부는 부랴부랴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어떻게 정책을 설정하고 개념화할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부처끼리도 이견이 있더라”고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 사업을 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오는가 하면 증시에서는 관련 테마주가 거론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 정책이 급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졸속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년 구상에서 나온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그런 사례로 꼽힌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날 곧바로 “2월 말까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상당수 기재부 공무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작년 12월27일 2014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놨는데 불과 열흘 만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3개년 계획’을 다시 짜게 생겼기 때문이다. 사무관 사이에서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해명 자료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마저 나온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사령탑을 맡았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의견 수렴하느라 1년6개월이 걸렸다”며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3개년 계획을 내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평소 숫자 달린 목표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이 이번엔 ‘3년 내 잠재성장률 4%,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기반 마련’과 같은 구체적인 숫자와 달성 시기를 못박았다는 점에서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숫자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국민에게 과도한 기대를 심어줄 뿐 한번도 이행된 적이 없는 졸속 정책이 많았다”며 “지난 1년 경제 분야에서 성과가 없자 이번에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작년 8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세법 개정안을 수정했다가 사방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원래 정부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분 국민이 세금을 조금씩 더 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연봉 3450만원 이상 근로자의 세 부담을 늘리는 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론이 나빠지면서 박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자 하루 만에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을 연봉 5500만원 이상으로 높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고소득층 증세 방안이 빠졌다’는 이유로, 경제 전문가들은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보편적 증세 원칙이 깨졌다’는 이유로 각각 수정안을 졸속이라고 혹평했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은 “조급하게 내놓는 정책은 결국 사회적 분란만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주용석/김주완/김우섭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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