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시간여행으로 과거 선택 바꾸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입력 2014-01-10 21:52  

'어바웃타임'을 통해 본 시간 여행의 경제학

곤란한 상황에 빠진 친구, 과거의 선택 바꿔 도와주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는 상황 초래해
과거 실수 만회하는 시간여행도 '원하는 미래' 가져오지 않는데



[ 김태호 기자 ]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누구나 가끔은 이런 상상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숱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모든 선택을 옳게 한다면 좋겠지만 후회가 남는 선택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인생이 불완전한 퍼즐로 비유되는 이유다. 그래서 과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후회가 남는 선택을 바꾼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상상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은 이런 꿈만 같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룬 영화다. 주인공 팀(돔놀 글리슨 분)은 성인이 되는 날 자신의 아버지(빌 나이 분)에게 엄청난 비밀을 듣게 된다. 바로 이 집안 남자들이 성인이 되는 순간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영화 속 시간여행의 방법은 간단하다. 어두운 곳에 가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하면 된다. 횟수에도 제한이 없다. 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애를 못했던 것이 자신의 인생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 능력을 이용해 ‘연애’를 해보겠다고 결심한다. 과연 그는 시간여행을 통해 ‘모태솔로’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팀은 첫 번째 시간여행 장소로 바로 전날인 연말파티를 선택했다. 용기가 없어 첫 키스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내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간 연말파티에서 첫 키스에 성공한다.

영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시간여행은 20세기 이후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과학적으로 완전히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님이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대표적이다. 시간은 항상 일정하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개념이다.(→시간여행은 가능할까)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중력이 강하게 작용할수록 느리게 흘러간다. 만약 빛의 속도로 누군가 우주선을 타고 1년을 여행했다면 그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1년보다 훨씬 더 흘러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런 상대성이론의 근거를 찾아내고 있다. 양자이론은 빛의 입자와 같은 미시세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데이비드 와인랜드 교수는 양자시계를 개발해 상대성이론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 양자시계는 기존 세슘시계보다 100배 정밀하다. 이 시계로 지상 100m 위에서 시간을 측정하면 시간이 보다 빨리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에서는 시간이 역전될 수 있다는 상상을 제공했다.

의도치 않은 미래

시간여행의 근간이 되는 이 과학이론들은 경제학에도 상당 부분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팀은 숱한 시간여행에도 불구하고 첫사랑 샤롯(마고 로비 분)과의 연애에 실패한다. 과거를 바꾼다고 해서 원하는 미래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이다. 첫사랑에 실패한 팀은 런던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다. 거기서 또 다른 사랑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만난다. 팀은 메리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아버지의 친구 해리(톰 홀랜더 분)가 직접 연출한 연극을 망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메리에게 호감을 얻기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팀은 해리의 연극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과거를 조정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현재에 메리는 다른 남자의 연인이 된 상태다. 시간여행은 점점 팀을 혼란으로 빠뜨린다.

양자역학은 이 같은 팀의 시간여행이 온전한 미래를 가져올 수 없음을 설명한다.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는 ‘불확실성’이다.(→시간여행으로 의도치 않은 미래 나타나는 이유)이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밀폐된 상자에 고양이가 갇혀 있다. 이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 있는 기계와 독가스가 든 통이 연결돼 있다.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은 50%. 만약 핵이 붕괴하면 독가스 배출로 고양이는 죽는다. 양자역학은 상자를 열기 전 고양이 상태를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았다’고 표현한다. 관측되기 이전 고양이의 상태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문득 깨달은 ‘행복의 법칙’

팀은 영화 중반 이후 시간여행의 능력을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시간여행으로 꼭 바람직한 미래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화 초반 서툴고 충동적이었던 그의 행동 역시 점점 신중하게 바뀌어 간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팀의 행동 변화를 ‘할인율’로 설명한다. 미래의 금액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할인율의 대척점에는 수익률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추산한 비율이다.(→시간여행은 합리적 투자일까) 합리적 투자자라면 이 할인율과 수익률 사이에서 신중하게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학에서 투자의 결정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에서는 마시멜로를 통해 할인율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실험한 바 있다. 개요는 이렇다. 어린이에게 마시멜로를 하나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한 아이는 “이건 100%의 수익을 보장 받는 투자”라고 외친다. 수익률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어린이들은 참지 못하고 즉석에서 마시멜로를 먹어버린다. 15분 뒤에 받을 또 하나의 마시멜로보다는 당장 먹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들의 관점에서는 15분 뒤에 갖게 될 마시멜로 2개에 대한 할인율(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당장 먹을 때 얻을 만족감(수익률)보다 높은 것이다. 반면 어른들은 같은 실험에서 대부분 마시멜로를 먹지 않는다. 할인율보다 수익률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할인하는 관점

팀은 시간여행을 거듭하면서 신중해지고 성숙해진다. 첫사랑 샤롯의 뒤늦은 유혹에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사용했던 시간여행 능력도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됐다. 팀은 점점 할인율이 낮은 사람, 즉 미래 자신의 모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팀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인생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팀이 시간여행으로 바꾼 미래는 없다. 끝내 메리와의 결혼에 골인하게 된 것도 팀이 현재의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것이었다. ‘어바웃타임’은 시간여행이 가능할지라도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현재의 삶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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