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영 기자 ]
#1.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는 김세준 씨(45)는 주말마다 등산 장비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없어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고교 동창들과 만나 등산을 시작한다. 지인들끼리만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네이버 ‘밴드’에 미리 일정을 올려놨기 때문이다.
#2. 지난달 남자친구가 생긴 대학생 여민영 씨(21)는 커플 SNS ‘비트윈’에 푹 빠져 있다. 남자친구와 둘만 연락할 수 있는 비트윈 애플리케이션(앱) 내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고, 남자친구가 고백과 함께 건넨 장미꽃다발과 같이 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음식 사진 등은 비트윈 앱의 사진 카테고리에 올려놨다. 올해 함께 하고 싶은 일 목록은 메모란에 적어 공유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공간
페이스북 트위터 등 공개적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SNS가 아니라 끼리끼리 그룹을 지어 만나는 폐쇄형 SNS가 각광받고 있다. 기존 공개형 SNS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게시물에 한계가 있지만, 폐쇄형 SNS는 아예 초대받은 소규모 사람끼리 모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2012년 8월 나온 네이버 밴드가 대표적이다. 밴드 앱을 내려받으면 앱 내에 여러 개의 모임방을 개설할 수 있다. 5명으로 이뤄진 ‘가족방’, 12명으로 구성된 ‘한경고등학교 2학년 1반’, 8명의 부서원이 활동하는 ‘우리 부서’ 등 다양한 이름의 방을 만들어 구성원끼리만 사진과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나온 카카오그룹도 밴드와 마찬가지 형태다. 카카오에서 나온 앱이기 때문에 카카오톡에서 그룹 대화를 하다가 그 대화방의 구성원을 통째 카카오그룹으로 옮길 수도 있다. 정해진 구성원이 채팅부터 사진 글까지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 벤처기업 VCNC가 만든 비트윈은 커플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두 사람만의 기록을 정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앱이며 커플들을 위한 이벤트가 공지된다. 친구 수를 50명으로 한정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SNS ‘데이비’도 인맥 확장을 염두에 둔 기존의 공개형 SNS와 달리 지인끼리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바일 공간을 목표로 했다.
○“기존 SNS는 피곤”
사람들이 안으로 숨어드는 이유는 뭘까. △공개된 SNS에 대한 피로감 △일상과의 연결성 △새로운 SNS에 대한 욕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SK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네이트온 패널을 통해 싸이월드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중 1개 이상의 SNS를 사용하는 만 14~39세 남녀 1037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사생활 노출과 인맥관리 등에서 이용자 대부분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로감의 원인 중 하나는 질투심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이용자가 쓰는 페이스북에는 흔히 근사한 저녁 식사 사진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은 행복한 분위기의 사진이 올라온다. 이 같은 게시물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경계심도 한몫한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 이용자가 자기검열을 많이 하기 시작한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자기공개도가 낮은 이용자가 편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이용자들이 광장에 나와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그룹을 지어 만난다. 이를 가상 공간에 반영한 폐쇄형 SNS가 더 자연스럽게 일상과 어울리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다는 해석도 나온다.
새로운 SNS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알려진 폐쇄형 SNS 외 다른 형태의 SNS가 등장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새 SNS를 원하는 주요 연령대는 10~20대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지 시넷의 기사 ‘왜 10대들이 페이스북을 지겨워하는가’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은신처, 친구들과 밀착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한 대표는 “한마디로 아빠 엄마 이모 삼촌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자기들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욕구는 관심사 기반의 소규모 버티컬(특정 용도로 한정된) SNS도 발달시킨다. 한 대표는 “국내에서는 수백만 이용자를 확보한 형태의 ‘작은 SNS’들이 페이스북 등 주류 SNS와 함께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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