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광부·어부·대장장이·태평양 원주민…과학은 천재의 산물 아닌 보통사람들의 협력

입력 2014-01-16 21:51   수정 2014-01-17 03:46

과학의 민중사 / 클리퍼드 코너 지음 / 김명진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664쪽 / 3만원


[ 서화동 기자 ]
라틴 이름인 아그리콜라로 알려진 16세기 인물 게오르그 바우어가 쓴 《광물에 관하여》는 가장 위대한 과학고전으로 손꼽히는 책이다. 의사이자 대학에 소속된 학자였던 그가 1556년 출간한 야금학 책은 그가 광부 및 금속직공들과 직접 접촉하는 한편 학자가 아닌 이들이 쓴 지방 문헌에서 정보를 얻은 덕분에 탄생했다. 그가 중요한 정보를 얻었던 《불꽃에 관하여》는 기술자이자 기업가였던 비링구치오가 쓴 책이다.

영국에서 과학혁명의 이정표라고 평가받는 《자석에 관하여》는 윌리엄 길버트가 1600년 쓴 책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였던 길버트는 접촉 없이도 움직이는 천연자석의 힘을 연구해 그 신비성을 벗겨냈다. 최초의 실험과학자로 불리는 그는 독자들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수행한 실험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보여줬다. 그는 책에서 대장장이 광부 선원 기구제작자들의 지식에 크게 의존했음을 밝혔다.

미국 역사가인 클리퍼드 코너 뉴욕시립대 교수는 《과학의 민중사》에서 이런 사례를 보여주면서 과학이 교육받은 일부 지식인에 의해 발전해왔다는 기존의 ‘과학 영웅 설화’에 반기를 든다. 과학은 극소수의 천재성으로 발전해온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름 없는 조력자들의 노력으로 발전해왔다는 것. 예컨대 마젤란을 비롯한 유럽의 항해자들에게 항해술과 별에 관한 지식을 전해준 이는 태평양 섬의 원주민들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사회부터 근대 과학이 싹튼 14~17세기를 지나 자본과 과학이 결합돼 새로운 거대과학이 급부상한 현대까지 섭렵한다. 수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 다방면의 과학 분야를 오가며 그리스 로마 이슬람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펼쳐진 민초들의 과학적 활약상을 찾아내 들려준다.

17세기에 살았던 토머스 홉스는 “사람의 일생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야만적이고 짧았다”며 선사시대 인간들의 지식을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동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구별한 것, 수많은 자연치료법을 발견한 것은 이들로부터 시작된 역사다.

달의 위치와 조석의 관계에 대한 꼼꼼한 기록으로 지리학과 천문학 발전의 바탕이 된 선원과 어부들,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손노동을 통해 화학과 재료과학의 진보에 기여한 광부와 대장장이,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지식을 만들어낸 금속 노동자와 기계공 등 지금까지 과학사에서 외면당했던 이들의 수많은 업적을 저자는 소개한다. 또한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됐던 여성들의 공로에도 주목한다.

저자가 과학 발전에 공헌한 위인들의 업적을 부인하거나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는 “과학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기여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활동이었다”며 “위대한 과학자들과 이름 없는 수많은 기술자의 협력과 상호작용이 과학의 발전을 낳았다”고 말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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