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최적의 결과' 찾아 '환상' 속 헤매던 천재 수학자의 '최적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입력 2014-01-17 22:05   수정 2014-01-18 04:12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본 게임이론

금발 미녀 두고 내기하다 '내시균형 이론' 착안
경제학의 새 지평 열었지만 40년동안 정신질환 시달려
끈질긴 노력으로 병 이겨내고 노벨경제학상 수상
평생 걸쳐 풀어낸 '완전한 수식' 수상소감에서 언급하는데…



[ 이현진 기자 ]
존 내시는 역사상 대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하지만 그 공이 오롯이 내시 자신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떨친 유명세의 상당 부분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 역을 맡아 호연한 러셀 크로의 덕이다.

영화는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40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내시의 삶을 다뤘다. 정신질환으로 황폐해져 가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내 앨리샤 라지(제니퍼 코넬리 분)와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영화는 2002년 제59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4개 상을 받았고, 같은해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여우조연상·각색상을 받았다. 내시의 실제 삶 역시 영화의 화려한 수상이력 못지않다. 그는 끈질긴 노력 끝에 정신질환을 거의 극복하고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남자는 천재다”

1940년대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프린스턴대 대학원. 무시험 장학생으로 입학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수학과 새내기가 눈길을 끈다. 내성적이며 무뚝뚝하고, 오만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이 천재가 바로 내시다. 그는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찾는 데에 매달린다.

실제 존 내시는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블루필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 됐을 땐 미국 전역에서 10명에게만 주는 웨스팅하우스 장학금을 받고 1945년 피츠버그의 카네기공대에 입학했다. 1948년 9월 카네기공대를 졸업한 뒤 프린스턴과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시에 입학을 제안받는다. 스무 살의 내시는 집과 가까웠던 프린스턴으로 진학한다. 영화 스토리는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당시 프린스턴 입학을 위해 카네기공대의 지도교수가 써준 추천장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이 남자는 천재다.”

금발 미녀 차지하기

내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어느 날 술집을 찾은 내시와 친구들. 매력적인 금발 여인을 발견하고는 ‘누가 먼저 금발 미녀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한다.

이를 구경하던 내시는 문득 무한경쟁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 중 한 명은 미녀를 차지하겠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그 밤을 우울하게 보내야 한다. 나중에 금발이 아닌 갈색머리 여자에게 다가가도 이미 자신들이 ‘대타’라는 것을 알아버린 그녀들의 반응은 신통찮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친구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조건에 맞는 상대(예를 들어 갈색머리 여자)를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짝을 이뤄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다. 내시는 “각자 금발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자. 승자는 결국 한 명뿐이지만, 그게 곧 최선의 결과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향해 “우리 모두 승자가 되는 길이 있지. 금발 미녀에게만 관심을 갖지 말고, 다른 여자들에게 대시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주장한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임의 방법)

이것이 내시가 ‘내시균형 이론’을 발견한 배경이다. 내시균형이란 상대의 전략이 주어졌다는 전제 아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죄수의 딜레마’처럼 두 사람 모두에게 최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선택이 존재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것. 하지만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 같은 최선이 반드시 사회 전체의 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쟁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 효용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게 내시균형의 요체다. ‘죄수의 딜레마’는 내시의 지도교수였던 알버트 터커가 만든 유명한 게임이론 모형으로 내시는 ‘비협력게임’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사례를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애덤 스미스는 틀렸어”

내시가 술집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정리한 논문을 본 지도교수는 말한다. “이건 150년 경제학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일세.”

교수가 말한 ‘150년 경제학의 근본’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다. 근대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미스는 개인이 각자 누릴 수 있는 최대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사회 전체가 최선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내시는 <그림1>의 구도가 담겨 있는 ‘금발 미녀 차지하기’ 게임으로 스미스의 이 명제를 정면 반박했다. 경기자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금발 미녀에게 대시)해서 달성하는 균형상태의 자원배분(한 명만 금발 미녀와 데이트, 혹은 모두 데이트 실패)이 사회적으로 비효율이라는 얘기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상호간 이익을 서로 조정할 때(갈색머리 여자에게도 대시) 얻는 사회적 총효용(더 많은 친구들의 데이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를 확장하면 “개인이 자기 자신은 물론,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사회 전체가 최선의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데 도달한다. 내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설명할 수 없는 시장실패를 이 같은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창했다. (→내시는 시장실패를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부임한 그는 훗날 아내가 된 앨리샤를 만나 사랑을 키우지만 행복한 생활도 잠시,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투입됐다는 망상에 시달리며 정신분열증을 앓기 시작한다. 천재성이 광기로 바뀐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킨 이는 바로 앨리샤.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내시는 정신분열증을 극복해나간다.

두 사람이 경기자(player)로 참여한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스미스의 말처럼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앨리샤는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을 떠나고, 내시는 정신병을 앓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내시는 노벨상 시상식단에 올라 앨리샤를 향해 말한다. “나는 오직 당신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 광기 속에서 완전한 논리의 수식과 공식을 찾아 헤맨 천재 수학자가 마지막에 풀어낸 해답은 바로 사랑이라는 고백이었다.

■ 시네마노믹스 자문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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