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칼바람 부는 겨울은 반갑지 않은 계절이다. 대부분은 아쉬움을 가슴에 품은 채 장비를 창고 깊숙이 넣어두게 마련이다. 특히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제대로 낚시를 즐기기란 더욱 어렵다. 얼음낚시나 하며 흉내를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골프도 해외에서 치는데, 낚시는 왜 해외에서 하면 안 되나. 조금만 내려가면 한국보다 훨씬 따스한 남쪽바다가 있는데….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많은 낚시공원이 있다. 서울보다는 따스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한국과 가까운 규슈로 떠났다. 언제나 나를 지켜온 작은 돔텐트와 함께….
인천을 떠난 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도착한 규슈는 공기부터 달랐다. 규슈의 요즘 기온은 4~5도. 이 정도면 낚시와 캠핑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날씨 아닌가.
호숫가 캠핑장과 우레시노 올레
가뿐한 마음으로 공항에 내려 뭔가 색다른 메뉴로 점심을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라쓰에 들러 맛난 오징어를 맛보기로 했다. 가라쓰는 희한한 지형에 성이 우뚝 서 있는 곳이다. 한쪽 옆에는 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엔 해변인 지형이 길게 뻗어 있다. 이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 하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거기에 가라쓰 성이 우뚝 자리잡고 있다.
가라쓰 성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포트리스 같은 느낌의 가라쓰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첫날부터 서둘러 낚시와 캠핑을 즐기다 보면 쉽게 몸이 지치기 때문이다. 첫날엔 편히 가라쓰 시내 구경을 나섰다. 맛난 오징어 회가 나오는 한 식당에 들렀다. 회로 만든 오징어가 통으로 나오는데 가만 보니 오징어 다리가 아직 살아 움직인다.
다음날 아침, 우레시노로 향했다. 이곳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히로코우라 캠핑장이 있는데, 올 3월 규슈올레로 지정이 될 우레시노 올레와 가깝다. 춥다고 해봤자 가을 단풍색을 보여주는 것이 고작인 우레시노 올레를 약간 맛본 뒤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캠핑장 바로 앞에 큰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호숫가 메타세쿼이아의 아름다운 갈빛에다 호수의 물안개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다. 과감히 루어대를 꺼내 낚시를 시도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애당초 즐거운 캠핑과 맛있는 음식 기행이 목적이었으므로 일단 낚싯대는 접어두고 캠핑부터 즐겨본다.
화산 보며 즐기는 가고시마 바다낚시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달려간 곳은 따스한 남쪽 바다 가고시마다. 가고시마는 일단 저 멀리 활화산이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는 사쿠라지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활화산이다 보니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으며 포효하곤 한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표정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가고시마를 찾아간 것은 사쿠라지마 앞에 자리잡고 있는 가고시마 가모이케 낚시공원 때문이다. 일본에는 한국과 달리 해상낚시공원이 잘 돼 있다. 낚시인들은 “아, 조금만 더 멀리 던지면 물고기가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 해상낚시공원은 그런 갈증을 풀어주는 곳이다.
가고시마 낚시공원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인공부두다. 길이가 100m에 달한다. 인공 구조물 한가운데에는 쉼터가 마련돼 있는데 낚시도구 대여점과 매점, 화장실, 휴게실, 전망대를 갖추고 있어서 휴일이면 가족단위 낚시애호가들이 꼬리를 물며 찾아온다. 파도가 잔잔한 긴코 만의 화려한 전망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현지인처럼 낚싯대를 빌려 바닷바람을 맞으며 낚시를 해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사쿠라지마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서 즐기는 낚시라…. 국내에선 낚시는, 특히 바다낚시는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돼 있지만 여기선 달랐다. 많은 남녀들이 데이트하듯 함께 와서 낚시를 즐긴다.
비용도 싸다. 성인 낚시비가 4시간에 400엔. 한국 돈으로 4000원 정도니까 한나절 가서 즐기기엔 그만이다. 현지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드리우니 바로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붉은 고기가 힘차게 입질한다. 찌가 쑥 들어갔다. 강력한 어신이다. 약 4~5m 수심에서 끌어냈다. 잡고 보니 도미다. 미끼는 누구나 새우를 쓰고 있는데 다들 많이 잡았다.
낚싯대를 드리우다 보니 저 멀리 사쿠라지마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엄동설한의 한국 땅을 벗어나 따스한 이역만리 규슈 끝에 내려와 낚싯대를 드리우니 이런 호사가 없다. 이렇게 캠핑과 낚시를 즐기다 보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것 같다.
사가현=허준규 캠핑 전문가 campingi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