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상사보다 더 무서워"…담배 끊게 만든 冬장군, 사무실 온도 18℃…키보드 치는 손가락이 '오덜덜'

입력 2014-01-20 20:55   수정 2014-01-21 10:57

김과장&이대리가 혹독한 겨울 나는 법


[ 강경민 / 전예진 / 황정수 기자 ]
대기업 A사에 근무하는 강 대리는 새해를 맞아 금연을 결심했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하루에 한 갑 이상 피워온 ‘골초’. 그동안 수십 차례나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매번 니코틴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런 그가 금연하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뼛속까지 스며드는 혹독한 추위다.

강 대리가 일하는 A사는 작년 11월 임직원의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사내 흡연장을 폐쇄했다. 애연가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조치였다. 회사 안에 부품공장이 자리잡고 있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면 공장을 가로질러 15분가량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왕복 30분은 족히 걸린다. 시간 낭비와 상사들의 눈총도 그렇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추위였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담배를 피우러 30분을 오가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모를 겁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굴복해 결국 담배를 끊게 됐습니다.”

20일은 24절기 가운데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겨울이 지나 가려면 아직도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김과장 이대리들은 춥고 긴 겨울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추위도 서러운데 내복 검사하겠다는 사장님

경기 파주에 있는 중소기업 B사의 김 대리(28·여)는 얼마 전 사장님의 ‘폭탄 발언’에 격분했다. 그의 사무실은 북향인 데다 난방시설이 잘 돼 있지 않아 겨울철에는 한낮에도 찬 기운이 스며든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김 대리는 올 겨울 들어 전기난로를 장만해 켜놓고 일을 했다.

문제는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 사장은 갑자기 ‘전기료 폭탄’을 맞자 특단의 조치로 ‘불시 검문’을 하기 시작했다. 1주일에 3번가량 불시에 사무실을 둘러보며 난로를 켠 직원을 체크하는 것이다. 처음엔 “날도 별로 안 추운데 왜 난로를 켜고 있느냐”고 부드럽게 한 마디 던지더니 한 달이 지나자 “개별적으로 난로를 켜지 말고 두세 사람꼴로 하나씩만 켜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추위에 약한 김 대리는 이런 지시를 어겼다가 사장에게 걸렸다. 다른 직원들이 작은 난로를 발 밑에 켜놓은 것과 달리 김 대리의 난로는 유난히 커서 눈에 잘 띈 것이 화근이었다. “김 대리,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어? 사무실 사람들 다 추운데 혼자만 난로를 켜면 되겠어.” 사장의 목소리엔 짜증과 불만이 가득 묻어났다.

김 대리가 “원래 추위를 잘 탄다”고 대꾸하자 성질 급한 사장은 ‘폭발’해 버렸다. “그럼 내복을 입고 다니면 되겠네요. 앞으로는 내복 검사를 하겠어요.” 순간 사무실 분위기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 듯 싸늘해졌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여직원의 내복을 검사하겠다는 것은 언어 성희롱 아닌가요. 회사를 때려치우더라도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아야 하는 신세가 억울하네요.”

○“최소한 일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서울의 한 구청에서 주무관으로 일하는 조모씨에게 가장 싫은 계절은 단연 겨울이다. 몸에 붙은 지방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깡마른 체구 탓인지 겨울만 되면 맥을 못춘다. 이런 그에게 한겨울의 추운 사무실은 견디기 힘든 공간이다.

더구나 공공기관은 정부 지침에 따라 겨울철 난방온도를 18도 이하로 맞춰야 한다. 말이 18도지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낡은 건물에서 중앙난방 시스템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벌어진 창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솔솔 들어와 체감온도를 실제 온도보다 한참 밑으로 떨어뜨린다. 컴퓨터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이 굳어 입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날이 적지 않다. 전기요금 때문에 개별 난로를 장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금을 아끼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최소한 일은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몸보다 마음의 추위가 더 심해

혹한의 겨울철에 마음까지 얼어붙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대기업 C사에 근무하는 신 부장은 지금까지 50년을 살아오면서 이번처럼 겨울이 춥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20여년 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다음달 그만둬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별’로 통하는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달려 왔지만 최근 4년 동안 승진 인사에서 연달아 미끄러진 탓에 결국 팀장의 명예퇴직 요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는 같은 업종의 중견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갈 곳을 정하지는 못했다. 몇 차례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없다. 통상 연말 임원 승진 인사가 끝나고 연초가 되면 이직하려는 고참 부장급 직장인이 적지 않다는 헤드헌팅업체 관계자의 얘기를 들으니 날씨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 결혼을 늦게 하는 바람에 아직 두 아들은 돈이 가장 많이 든다는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 중이다. “얼마 전 면접을 마친 뒤 지하철역으로 걸어 가는데 유독 춥더군요. 자식들 생각에 먹고 살 걱정까지 들어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친 없는 겨울…견디기 힘든 고통

대기업 유통 계열사에 다니는 문 대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2년간 사귄 여자친구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다. 여자친구는 옆팀 직원으로 둘은 사내에 소문이 난 커플이었던 만큼 충격은 더 컸다.

최근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데이트 약속을 여러 번 깬 데다 여자친구에게 신경을 거의 쓰지 못한 게 문제였다. 문 대리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애원했지만 한 번 등을 돌린 여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강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친과 데이트를 즐겼겠지만 이별 이후 문 대리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이별의 아픔은 그렇다 치더라도 추운 날씨에 꼭 껴안고 다니는 커플들의 애정행각을 보면 온몸이 더욱 으스스해지기 때문이다. “여친 없이 겨울을 나는 게 이렇게 혹독하고 추운지 몰랐습니다. 집에만 있다 보니 기분마저 우울해지네요.”

강경민/전예진/황정수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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