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에 출석, “국민께 혼란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측 사퇴요구에 대해선 “제 신년인사가 큰 어떤 것(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제 과오 탓에 그만두지 않는 한 3년의 임기를 충실히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그는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최 사장의 ‘인사청탁’ 파문이 일단락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20일 비공개최고회의를 열어 최 사장이 19대 총선에서 출마했던 대전 서구을의 당원협의회 위원장에 이재선 전 자유선진당 의원을 임명했다. 최 사장이 측근을 앉혀 달라고 인사청탁을 한 자리다. 최사장이 요청한 후임자는 사돈 관계인 김영관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부시장은 최 사장이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했을 당시 캠프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번 사태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보장받기 위한 최사장의 돌출행동쯤으로 묻히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협위원장 인선을 앞두고 적잖은 내부 갈등이 표출된 점에서 당내 계파간 세력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든 사안에 대해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모르쇠’ 일관하던 황 대표가 그 처럼 직설적 화법으로 인사청탁 사실을 흘린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황 대표는 “최 사장이 자기 지역구에 정치할 수 있게 챙겨달라고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최 사장의 요청을 묵살하기 위한 의도적인 ‘언론플레이’란 의혹이 짙다. 이 같은 의혹은 새누리당 내부 ‘비박(非朴)의 반란’으로 부풀려진다.
최사장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대전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박범계 민주당 의원에게 패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된 것에 알 수 있듯 그는 대표적인 친박(親朴)인사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말 사상최대의 철도파업 사태에 강경기조로 맞대응, ‘철의여인’‘제2의 대처수상’ 등으로 불리며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공직자 처신이나 도의적 문제를 떠나, 이런 최 사장이 자신의 후임자로 측근을 요청한 게 사나흘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만큼 지탄받을 일인가. 최사장측 지지자들이라면 당연히 품을 만한 의문이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트위터에서 “자기 당협 조직원들 좀 자기 대신 잘 챙겨달라는 요청을 언론에 고자질한 당 대표가 제 정신이 아닌 거죠”라고 황대표를 비난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최 사장의 청탁을 받고 당 지도부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들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공방의 후유증 등으로 대선승리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에 대척점에 선 야당이 사사건건 ‘낙하산인사’로 비난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를 챙겨야 하는 당 지도부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비주류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말 ‘새누리당 당원님들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를 통해, 대선공신들에게 조금 더 참아줄 것과 미안한 마음을 전달한 것은 이 같은 사정에서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당 지도부로서는 코레일 사장을 줌으로써 계산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최사장이 비주류 몫으로 남은 자리에 숟가락을 얹을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황대표 등 지도부가 최사장의 청탁을 ‘단칼’에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협위원장 자리는 선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한 관행이 있고, 후보인 김 전 부시장은 ‘원조친박‘인 서청원이란 든든한 ‘빽’까지 뒀기 때문이다. 김 전 부시장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서 의원을 보필했었다.
당협위원장 자리를 놓고 친박(親朴) 대 비박(非朴)간 충돌양상으로 비화된 것이다. 비주류인 황대표 등이 당내 교통정리보다는 여론의 힘을 빌린 것은 역학구도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언론플레이는 먹혀들었다. 최 사장에 묵은 감정이 있던 야당이 연일 규탄성명을 내면서 ‘들러리’를 서주자 효과는 배가 됐다.
‘최연혜 사태’는 새누리당내 계파간 세력갈등이 언제라도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이 2년째에 접어든데다, 6.4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등 정치적 ‘빅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중이어서 계파간 세력다툼은 더욱 본격화될 것이란게 정치권 분석이다.(끝)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