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정/박종서 기자 ] “이미 영업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화영업(텔레마케팅·TM) 조직 폐쇄는 물론이고 전국에 수십만명에 달하는 보험·카드 등 TM 관련 인력이 모두 거리에 나앉을지도 몰라요.”
정부가 27일부터 전화, 문자메시지(SMS), 이메일을 통한 대출 권유 및 모집을 사실상 금지하는 ‘비상 조치’를 시행하기로 하자 보험·카드사와 대출모집인들이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대출모집인을 통한 영업 비중이 큰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의 충격이 예상된다. 대량 실직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법적인 근거도 없는 ‘황당’한 강경 조치만 남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영업하지 말라는 얘기”
보험사들은 3월 말까지 전화 등을 통해 보험 가입을 권유할 수 없게 된다. 카드사를 통해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카드슈랑스도 불가능해져 비상이 걸렸다. 경기 침체와 시장 포화로 영업환경이 나빠진 상태에서 강력한 영업 채널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생보사 마케팅 담당자는 “고객정보 유출 사건 이후 TM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이 심해져 고객 동의를 받은 자체 정보만 사용하는데도 개점휴업 상태”라며 “실적 타격은 물론 관련 조직 운영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의 예외 대상인 보험사 7곳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TM 비중이 높은 KB생명(27.43%) 흥국화재(20.89%) 신한생명(19.87%) AIA생명(16.56%) 등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수익원 잃은 카드사 ‘안절부절’
TM을 통한 카드 모집과 대출 권유에 더해 카드슈랑스까지 금지된 카드사들도 망연자실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설계사 조직이 취약한 중소형 보험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전화로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카드슈랑스로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2002년 3500억원 규모이던 카드슈랑스 시장은 2012년에는 1조5000억원까지 급성장했다.
전화 등으로 대출 상품을 알선해온 대출 모집인과 중개업자들이 받을 타격은 더 심각하다. 대출모집인은 대출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내 금융사와 연결해주고 금융사로부터 대출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사람이다. 전국적으로 1만80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한 대형 저축은행과 전속 계약을 맺고 전화대출 영업을 해온 대출 중개회사 사장은 “고용한 상담사 10여명에게 4월 이후까지 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7년 경력의 팀장급 대출 중개인은 “TM이 다시 허용되더라도 관리·감독이 강화돼 예전처럼 영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량 실직 사태 오나
보험사와 카드사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TM 조직 축소를 결정한 보험사도 나왔다. 현대캐피탈은 27일 대책회의를 열고 TM 종사자 등의 인력을 어떻게 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금융사들은 TM 종사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주기적으로 재계약하는 형태로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임금 구조는 기본급을 보장해주고 할당된 목표치를 달성하면 수당을 준다. 3월까지 TM이 전면 중단되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관련 인력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한 손보사 TM 종사자는 “월 200만원을 버는데 일반 설계사와는 영업 방식이 달라 무작정 설계사로 전직할 수도 없다”며 “수십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TM 관련 직종이 사라질 것 같아 생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대책 발표에 급급해 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카드사 임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TM까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심한 조치”라며 “대면 영업 위주의 대형사가 반사이익을 얻어 쏠림 현상이 오히려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은정/박종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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