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유선 기자 ]
신이 비날레스를 만들었다면, 당시 무척 지쳐 있었던 것일까. 창조에 열을 올리느라 피로해진 신은 비날레스의 모든 것에 느긋함과 여유를 듬뿍 부어놓은 듯하다. 쿠바 아바나의 서쪽에 있는 피나 델 피오로의 작은 마을 비날레스로 향했다. 이곳의 고즈넉한 풍경을 마주하면 팽팽하게 당겨진 시간의 속도가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곳에선 느긋하게 흐르는 순간순간을 품격 있게 즐길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시가를 생산한다.
시가를 물면 생겨나는 미학적 아름다움
시가와 관련한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한 두 사람은 체 게바라와 윈스턴 처칠이다. 체 게바라가 시가를 손에 들면 그의 눈빛은 더 우수에 깃든 듯 보였고 그의 남성적 매력은 배가됐다. 처칠은 또 어떤가. 시가를 질겅이며 사색하거나 무언가를 끄적이는 사진 속 모습은 고뇌에 가득 찬 지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체 게바라, 처칠, 그리고 많은 시가 애호가들이 열망하는 시가는 바로 쿠바산이다. 쿠바의 시가가 유명한 까닭은 시가의 맛을 결정하는 쿠바만의 고유한 블렌딩 기술도 한몫하지만, 최고의 담뱃잎을 생산하는 쿠바 서북쪽의 비옥한 토양과 자연 환경 때문이다.
고요한 태고의 자연, 비날레스
비날레스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시가 산지인 피나 델 리오 지역의 오르가노스 산맥 쪽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아바나에서 출발해 차로 세 시간을 달려 닿은 비날레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활기찬 아바나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들숨에 맑은 공기가 들어차고 짙은 초록이 두 눈 가득 반짝이는 전원의 풍경이 더없이 아늑하다. 사탕수수와 동물 사료를 위한 건초 재배지도 있지만, 대부분은 담뱃잎 재배지다.
누군가는 에덴동산을 보려면 비날레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소달구지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하는 주민들은 낯선 얼굴의 여행자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힘껏 손을 흔들어준다.
산과 계곡, 동굴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자연경관은 1999년 쿠바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모고테라는 지형 때문이다. 비날레스는 약 1억년 전 바다의 석회암 지대가 융기해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인데 물에 약한 석회암 지대가 침식된 후 단단한 지반만 남아 섬처럼 우뚝 선 언덕이 모고테다. 우뚝 솟은 모고테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담배밭의 풍경을 가르며 ‘엘 니뇨’라는 사람의 담배농장을 향해 달렸다.
따뜻한 공간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시가
엘 니뇨는 비날레스에서 유명한 베게로(담배 재배자를 일컫는 쿠바식 명칭)다. 그의 농장으로 시가를 사랑하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 덕에 쿠바 정부는 그의 집에 국영 레스토랑까지 차렸을 정도다.
레스토랑에서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소년기부터 40년간 줄곧 담배를 말아온 시가 장인 프란시스코다. 나무 도마 위에 잘 말린 커다란 담뱃잎을 깔고 잘게 부순 잎들을 올린 후 돌돌 말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양의 시가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9~10월에 파종해 3~5월에 수확한 담뱃잎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며 세심하게 건조해야 한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건조실(이곳 사람들은 보이오라고 부른다) 안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건조 중인 담뱃잎으로 가득하다. 담뱃잎이 마르는 향이 조금 퀴퀴하지만 어릴 적 할머니의 시골집 헛간에서 맡던 냄새와 비슷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프란시스코가 시가를 마는 동안 곁에선 누군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쿠바에선 대부분의 시가 공장이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을 정식으로 고용해 수많은 타바케로스(담배 제조업 종사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최적의 땅에서 재배한 담뱃잎은 수백 번의 손길과 2~3년의 숙성을 거쳐, 즐거운 일터에서 흥겨운 리듬을 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진다. 시가를 태우면 냄새가 아닌 향이 나는 건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옥한 토양과 따뜻한 사람들의 정겨운 손길에서 배어난 향은 체 게바라의 고된 혁명의 삶을,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를 위로해왔다. 시간이 느긋하게 흐르는 비날레스에서 여행자가 받은 위로는 시가 연기를 타고 세상 구석구석으로 전해진다.
여행팁
쿠바로 가는 방법은 멕시코 칸쿤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아바나로 입국하는 게 일반적이다. 쿠바의 공용어는 스페인어. 화폐는 페소를 사용한다. 조각상이 그려진 CUC(세우세·외국인 전용 화폐)와 인물이 그려진 MN(모네다 나시오날·내국인 전용 화폐)이 있다. 1CUC=25MN으로 환율 차이가 크다. 캐나다달러나 유로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아바나에서 비날레스까지의 버스 요금과 택시비의 차이는 크지 않다. 버스를 탈 경우 두 배 가까이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택시를 불러 흥정하는 편이 낫다. 동행인이 많을 경우 택시가 훨씬 유리하다. 여행 일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쿠바 현지 여행사를 통해 1일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비날레스(쿠바)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신이 비날레스를 만들었다면, 당시 무척 지쳐 있었던 것일까. 창조에 열을 올리느라 피로해진 신은 비날레스의 모든 것에 느긋함과 여유를 듬뿍 부어놓은 듯하다. 쿠바 아바나의 서쪽에 있는 피나 델 피오로의 작은 마을 비날레스로 향했다. 이곳의 고즈넉한 풍경을 마주하면 팽팽하게 당겨진 시간의 속도가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곳에선 느긋하게 흐르는 순간순간을 품격 있게 즐길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시가를 생산한다.
시가를 물면 생겨나는 미학적 아름다움
시가와 관련한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한 두 사람은 체 게바라와 윈스턴 처칠이다. 체 게바라가 시가를 손에 들면 그의 눈빛은 더 우수에 깃든 듯 보였고 그의 남성적 매력은 배가됐다. 처칠은 또 어떤가. 시가를 질겅이며 사색하거나 무언가를 끄적이는 사진 속 모습은 고뇌에 가득 찬 지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체 게바라, 처칠, 그리고 많은 시가 애호가들이 열망하는 시가는 바로 쿠바산이다. 쿠바의 시가가 유명한 까닭은 시가의 맛을 결정하는 쿠바만의 고유한 블렌딩 기술도 한몫하지만, 최고의 담뱃잎을 생산하는 쿠바 서북쪽의 비옥한 토양과 자연 환경 때문이다.
고요한 태고의 자연, 비날레스
비날레스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시가 산지인 피나 델 리오 지역의 오르가노스 산맥 쪽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아바나에서 출발해 차로 세 시간을 달려 닿은 비날레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활기찬 아바나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들숨에 맑은 공기가 들어차고 짙은 초록이 두 눈 가득 반짝이는 전원의 풍경이 더없이 아늑하다. 사탕수수와 동물 사료를 위한 건초 재배지도 있지만, 대부분은 담뱃잎 재배지다.
누군가는 에덴동산을 보려면 비날레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소달구지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하는 주민들은 낯선 얼굴의 여행자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힘껏 손을 흔들어준다.
산과 계곡, 동굴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자연경관은 1999년 쿠바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모고테라는 지형 때문이다. 비날레스는 약 1억년 전 바다의 석회암 지대가 융기해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인데 물에 약한 석회암 지대가 침식된 후 단단한 지반만 남아 섬처럼 우뚝 선 언덕이 모고테다. 우뚝 솟은 모고테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담배밭의 풍경을 가르며 ‘엘 니뇨’라는 사람의 담배농장을 향해 달렸다.
따뜻한 공간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시가
엘 니뇨는 비날레스에서 유명한 베게로(담배 재배자를 일컫는 쿠바식 명칭)다. 그의 농장으로 시가를 사랑하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 덕에 쿠바 정부는 그의 집에 국영 레스토랑까지 차렸을 정도다.
레스토랑에서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소년기부터 40년간 줄곧 담배를 말아온 시가 장인 프란시스코다. 나무 도마 위에 잘 말린 커다란 담뱃잎을 깔고 잘게 부순 잎들을 올린 후 돌돌 말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양의 시가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9~10월에 파종해 3~5월에 수확한 담뱃잎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며 세심하게 건조해야 한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건조실(이곳 사람들은 보이오라고 부른다) 안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건조 중인 담뱃잎으로 가득하다. 담뱃잎이 마르는 향이 조금 퀴퀴하지만 어릴 적 할머니의 시골집 헛간에서 맡던 냄새와 비슷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프란시스코가 시가를 마는 동안 곁에선 누군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쿠바에선 대부분의 시가 공장이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을 정식으로 고용해 수많은 타바케로스(담배 제조업 종사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최적의 땅에서 재배한 담뱃잎은 수백 번의 손길과 2~3년의 숙성을 거쳐, 즐거운 일터에서 흥겨운 리듬을 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진다. 시가를 태우면 냄새가 아닌 향이 나는 건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옥한 토양과 따뜻한 사람들의 정겨운 손길에서 배어난 향은 체 게바라의 고된 혁명의 삶을,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를 위로해왔다. 시간이 느긋하게 흐르는 비날레스에서 여행자가 받은 위로는 시가 연기를 타고 세상 구석구석으로 전해진다.
여행팁
쿠바로 가는 방법은 멕시코 칸쿤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아바나로 입국하는 게 일반적이다. 쿠바의 공용어는 스페인어. 화폐는 페소를 사용한다. 조각상이 그려진 CUC(세우세·외국인 전용 화폐)와 인물이 그려진 MN(모네다 나시오날·내국인 전용 화폐)이 있다. 1CUC=25MN으로 환율 차이가 크다. 캐나다달러나 유로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아바나에서 비날레스까지의 버스 요금과 택시비의 차이는 크지 않다. 버스를 탈 경우 두 배 가까이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택시를 불러 흥정하는 편이 낫다. 동행인이 많을 경우 택시가 훨씬 유리하다. 여행 일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쿠바 현지 여행사를 통해 1일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비날레스(쿠바)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