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보다 80년 앞선 '세계 最古 국제기구'의 큰 잔치
망중립성·사물인터넷·사이버 보안 등 핫 이슈 논의
업계 관계자 등 30만명 방한, 총 7000억대 경제효과
[ 김태훈 기자 ]
1912년 4월14일.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해 침몰할 때 10마일쯤 떨어진 곳에는 캘리포니안호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배는 무선통신 장비를 꺼놓아 타이타닉호가 보낸 구조신호를 듣지 못했다. 인근에는 다른 배들도 많았지만 통신설비조차 갖추지 않고 있었다. 당시까지 선박의 무선통신설비 구축, 조난신호 청취, 구조 등이 모두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직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신인 국제무선전신연합은 런던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선박이 무선통신설비를 갖춰 구조신호를 청취하고 구조에 나서야 하는 내용을 담은 헌장을 마련했다.
선박들의 통신설비 구축과 구조 의무를 규정한 ‘ITU 헌장 제46조’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이야기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주요 국제 규약과 표준을 정하는 ITU 전권회의가 오는 10월20일부터 11월7일까지 3주간 한국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4년마다 198개 회원국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는 ‘ICT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새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 국제 행사
국제연합(UN)의 ICT 전문기구인 ITU는 1865년 출범해 현재 19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UN보다 무려 80년 앞서 만들어진 세계 최고(最古) 국제기구다. 한국 개최는 2010년 멕시코회의 때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ITU전권회의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1994년 일본 교토회의 이후 두 번째다. 새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 국제행사가 될 전망이다.
ITU전권회의는 일반인에게는 낯선 행사지만 우리 생활과는 뗄 수 없는 것이 많다. 선박 구조 헌장을 만들기 4년 전인 1908년 긴급 구조신호 ‘SOS’를 만든 것도 국제무선전신연합이다. SOS는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모스 부호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타이타닉호도 당시 침몰 위기에 처하며 SOS를 사용했다.
한 시간만 없어져도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는 스마트폰을 비롯,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지도 검색, 위성을 통한 지구 반대편의 실시간 중계 등이 가능해진 것도 모두 ITU의 활동 덕분이다. ITU는 글로벌 주파수 배분, 위성궤도 지정, 각종 기술 표준 제정과 개발도상국의 정보 격차 해소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세계로 수출되고 해외여행의 필수가 된 글로벌 로밍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ITU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 인권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 ‘델마’ 역을 맡은 지나 데이비스는 2012년 6월부터 ITU 여성특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 영화와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역할 가운데 80%를 남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ICT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IT 융합, 사물인터넷 등 논의
최근 ITU에서는 망중립성 등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를 비롯, 인터넷 거버넌스·사이버 보안·사물인터넷(IoT)·ICT와 의료 등 타 산업 간 융합 등 굵직한 이슈가 논의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올림픽만큼이나 전권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외교전을 펼치는 이유다.
이번 회의에는 198개국 장차관 인사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 3000여명이 한국을 찾는다. 여기에 업계 관계자와 취재진 등을 합하면 30만명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향후 4년간 ITU의 정책·예산, 헌장·협약 등을 개정하는 동시에 사무총장 등 5명의 임원도 선출한다. 한국은 ITU 5대 선출직 가운데 하나인 표준화총국장(ITU-T)에 이재섭 KAIST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이 후보로 나섰다. 표준화총국장은 국제 정보통신 표준에 대한 최종결정 권한을 갖는 자리다. 당선되면 ICT 외교무대에서 한 단계 입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월드IT쇼 통해 한국 기술력 과시
전권회의는 한국의 ICT 기술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부는 이 기간 ICT 엑스포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 전자신문 등이 주관하는 국내 최대 IT 전시회인 ‘월드IT쇼(WIS)’도 올해는 서울 코엑스가 아니라 부산 벡스코에서 10월20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와 관련된 주제관을 비롯해 기업들의 전시관을 마련해 한국의 신기술과 제품을 세계 각국 관계자에게 알릴 예정이다.
석학들과 기업 최고경영자의 강연을 듣고 ICT의 전망과 기술 트렌드 변화 등을 논의하는 ‘글로벌 ICT 프리미어 포럼(10월27~28일)’, 회원국 대학생들이 ICT 협력·발전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로벌 청년포럼(11월4~6일)’도 마련된다. K팝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한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스마트 한류 축제’와 ‘ICT 체험 관광프로그램’ 등도 부산 시내 해변 특설무대나 번화가에서 수시로 열릴 예정이다.
이상학 미래창조과학부 ITU전권회의 준비기획단 부단장은 “이번 회의 기간에는 3000여명의 회의 관계자와 약 30만명의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것”이라며 “관광·전시·컨벤션 분야의 직접효과 1407억원, ICT·한류 관광효과 933억원, 전자정부 수출 1178억원, ICT 브랜드 홍보에 따른 수출효과 3600억원 등 총 7118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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