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 설움 견디며 연간 25억 투입
"전통종목 지켜라" 정주영 회장 뜻 받들어
[ 서기열 기자 ]
28일 충남 홍성군 홍주문화센터 씨름장에서 막을 올린 ‘IBK기업은행 2014 설날장사씨름대회’. 대한씨름협회가 주관하는 이 대회에 참가한 19개팀 가운데 프로팀은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이 유일하다.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훈련장을 둔 이 씨름단의 구성원은 선수 13명과 감독·코치·트레이너 등 총 16명. 명절이면 어김없이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는 민속씨름의 프로팀 명맥을 잇고 있다.
다른 프로팀이 없어 코끼리씨름단의 경쟁 상대는 주로 지방자치단체의 실업팀이다. 이 씨름단은 유일한 프로팀답게 연간 5회 정도 열리는 전국대회에 백두급, 한라급, 금강급, 태백급 등 4개 전 체급에 선수를 출전시킨다. 울산동구청, 창원시청, 동작구청 등 지자체 실업팀이 한두 체급의 선수 4~5명으로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씨름단의 황주석 단장은 이날 “프로팀답게 백두급과 한라급에서는 언제나 우승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슬기 선수가 천하장사에 오른 것을 포함해 소속 선수가 백두장사 1회, 금강장사에 2회 올랐다. 선수단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포함해 연간 25억원 안팎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출범한 프로씨름은 올해로 32년째다.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의 전신은 1985년 창단된 현대중공업 씨름단이다. 2005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다른 기업들이 씨름단을 없앨 때도 전통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씨름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간판을 달고 20년(1985~2004년), 현대삼호중공업 이름으로 10년(2005~2014년)째 프로씨름의 대표적인 팀으로서 지위를 다져왔다.
씨름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럭키금성(LG), 조흥은행, 일양약품, 삼익가구, 청구 등 많은 기업이 씨름단을 활발히 운영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씨름판을 고사위기까지 몰아갔다. 1997~1998년 기업들은 자금난을 겪으면서 가장 먼저 스포츠 예산을 줄였고 그 여파로 6개 씨름단이 해체됐다. 비인기 종목인 데다 수익도 나지 않는 씨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씨름단의 잇단 해체 와중에도 현대중공업 씨름단은 풍파를 견뎌냈다. 2004년 LG, 2005년 7월 신창건설이 씨름단을 해체하면서 유일한 프로 씨름단이 됐다. 현대중공업이 30년 동안 씨름단을 유지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황 단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씨름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며 “정 명예회장은 민족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단을 운영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사명감을 갖고 일하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가 비인기 종목인 씨름단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계속 운영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역 씨름선수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황 단장은 “올해부터 전주대와 세한대 등 호남지역 대학에서도 우수한 선수를 뽑을 계획”이라며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씨름의 열기를 더 달구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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