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설날은 기자에게 항상 풍요로움이 넘치는 행복한 연휴였다. 무남독녀인데다 친척 동생도 없어 세뱃돈 점사(점발사격, 목표에다 한 발씩 또는 몇 발씩 쏨)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허리가 휘어라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은 설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까치까치' 설날이고, 누군가에게는 '까칠까칠' 설날이다.</p> <p>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 얼마 전 패기있게 게임 계정을 삭제했지만 일 주일만에 복구한 대학생, 호주에 어학연수를 떠나 캥거루 고기를 썰면서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은 취준생(취업준비생), 스마트폰 게임을 장르별로 폴더에 나눠서 넣어놓고 뿌듯해하는 일반적인 변태부터 똑같은 게임을 플레이용-전시용-소장용까지 3개를 구매하는 코어한 게임업계 종사자까지.</p> <p>설을 앞두고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게임은 무엇인가요?'</p> <p>
가장 먼저 답을 준 사람은 고등학교 친구다. 페이스북에 게임 계정 삭제 인증샷까지 패기있게 올렸지만, 소리 소문 없이 복구하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중인 26세
남성 K군이다. 그는 '나에게 게임은 도전이다.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몇 개월째 '골드' 랭크에 도전중이다.</p> <p>흔히 게이머라고 한다면 남성을 떠올리지만, 웬만한 남자들 못지않게 게임을 사랑하는 26세 S양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서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코어한 게이머이다. 그녀는 여성 게이머적 감성을 듬뿍 담아 이야기했다.</p> <p>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 중 하나가 이정하의 '낮은 곳으로'다. 시에서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문장이 있다. 나에게 게임은 '잠겨 죽어도 좋은 것'이다.'</p> <p>조금 연령대를 낮춰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K양과 L군에게도 물어봤다. K양은 '글쎄요. '캔디크러쉬사가'? 이것밖에 생각이 안나요'라고 이야기했고, L군은 '새로운 청소년 문화다'라고 말했다. 물론 슬픈 대답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J군은 '유일한 낙이다'라고 답했다.</p> <p>학생들에게만 슬픈 대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엄격해 업무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26세 P양은 화장실에 숨어서 몰래 게임을 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신입사원이다. 그녀는 '유일한 휴식시간이다'라고 말했다.</p> <p>
이번에는 1960년대생으로 확 높여 L여사에게 물어봤다.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져, 쉬는 날에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는 그녀는 '추억이다. 어릴 때 게임을 즐겨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경쟁하며 새로운 재미를 경험하고 있다. 별거 아니지만 점수 경쟁을 하고, 자랑하기를 누르며 함께 놀 때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고 이야기했다.</p> <p>게이머 남친에게도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가수 정인으로 빙의해 노래 '사랑은'을 불러주었다. '나에겐 게임은 상처만을 남겼지만, 게임은 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게임은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가, 게임은 절망이 뭔지도 알게 했죠, 게임은 그렇게 왔다간 거죠.'</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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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장르별로 게임을 나눠놓은 변태적 취향의 28세 K군은 '내 아이큐의 근원. 지적 능력을 길러준 도구? 게임 하면서 머리가 엄청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멘사 회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p> <p>이밖에도 25세 Y양은 'BF(베스트 프렌드)이다. 꼭 필요하고, 언제 만나도 즐겁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26세 P군은 '사교의 수단', 33세의 P군은 '휴식 그 이상의 것. 제2의 자아실현 공간', 26세 R양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세계'라고 이야기했다.</p> <p>이처럼 비교적 게임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게임을 '재밌게 즐기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게임업계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약간 더 깊게 게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p> <p>이제 막 게임업계에 들어와 발을 담그고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고 있는 한 27세 남성 새내기 사원은 '인생의 동반자다. 함께 커가고 있다. 떨어질 수 없는 친구 같지만 친구 아닌 오묘한 사이다.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주말에 게임하다가 머리 빠질 뻔했다. 여기에 결정타로 지금 밥을 먹여주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직 미혼인 그는 게임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p> <p>한 회사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불혹의 한 대표님은 '내 사람들의 꿈과 땀이다. 단순히 게임을 넘어서 한 명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에게 게임은 한 명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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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똑같은 게임을 플레이용-전시용-소장용으로 3개 구입하는 뼛속까지 게이머 38세의 H군은 '성장판이다'라며 끝내주는 대답을 했다. 그는 '비록 신체적 성장판은 이미 닫힌 지 오래지만, 게임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영화나 책을 통해서도 간접적 체험이 가능하지만, 게임은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방관자가 아닌 주체가 되는 것. 나는 지금도 게임을 하며 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p> <p>기자에게 게임은 '레알겜톡'이 아닐까 생각한다. 잘하진 못해도 좋아하고, 가능한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것에서도 비슷하다. 여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똑같다. 따라서 기자에게 게임은 '레알겜톡'이다.</p> <p>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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